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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름관찰기 10 당신의 머리카락 2014.04.24






요즘은 무얼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얼해도 그저 딴짓을 하는 것만 같습니다. 어떤 것을 써도, 어떤 것을 생각해도 말이죠.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일을, 이를 테면 아홉 시까지 출근을 하기 위해서 일곱 시 삼십 분에 일어나는 것 같은, 하고 있어도, 마음은 여기 있고 몸은 다른 곳에 있는 그런 기분입니다. 그 반대일 수도 있죠. 그러니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하고 있지만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셈이죠. 나는 이 세계에 없는 사람. 살 것도 살아온 것도 없는 것만 같은.

슬럼프는 아니에요. 왜 아닌지 정확하게 대답할 수는 없지만, 슬럼프라고 하기엔 억울해요. 나뿐 아니라, 나의 이 알 수 없는 상태에 의해 손해를 보고 있을 누군가, 있겠죠 분명,에게 역시 그러할 겁니다. 매 순간 정신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정신을 차리는 순간엔 예전처럼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최근 너무 많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실제로 너무 다른 일들을 다양하게 하고는 있습니다만, 아무 일도 못하고 있으니 그 일들로 정신이 없었던 적은 사실 없습니다. 그 일들의 바쁨으로 인해 지친 적이 없다는 이야기이고, 그러므로 일을 못하기는켜녕 제대로 해본 적도 없다는 이야기. 핑계가 될 수 없죠. 그럼, 그냥 단지 조금 슬픈가. 슬픈 건가. 감정의 치우침으로 이렇게 된 건가. 글쎄. 하지만 그건 언제나 그랬는걸. 그러니까,

지금 기분은 꼭 구름 같다고 생각해봅니다. 구름. 창백한 하늘 위로 사라지려는 구름. 아주 희미하고 실낱처럼 보이는 그런 구름. 살짝만 움직여도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그런,


문득, 당신의 머리카락이 떠올랐습니다. 그날은 아주 적절한 저녁이었고, 모든 것을 푸름에서 어둠으로 변해하고 있었죠. 당신의 머리카락의 일부를 바람이 매만지다 말았아요. 그때, 살짝, 이마 위로 지나간 어떤 근심. 그리고 그 근심을 대신 보여주기라도 하듯, 당신의 하얀 이마를 가로질러 속눈썹에 닿아 있던, 그렇게 걸려 흔들리는 머리카락 한 가닥. 나는 어김없이 그런 당신을 훔쳐 보고 있었죠. 당신의 머리카락을 보듯이, 가볍게 가벼운 척하면서. 당신은 아주 작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어요. 나는 당신의 근심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면서 그런 당신의 침묵을 따라하고 있었죠. 모든 것이 점점 투명해집니다. 그때의 당신과 나. 나는 당신 눈앞에서 내가 투명해지고 투명해지다가 결국 사라질까 봐 두려웠어요. 그렇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그런 공포가 나를 휘감고 있었어요.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죠. 할 수 있는 것도 없었지만, 하고 싶은 것도 없지만, 머리카락은 가늘고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고, 그것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 그 이유만으로 내게 얼마나 아름답게 보였는지요.

나는 그때 당신의 이마를 가로지르는 한 가닥 머리카락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부드럽게 쓸어올려주고 싶은 마음으로 지금을 살아가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나에 대한 애정이라곤 손톱의 끝만큼도 없는 사람이지만, 맥없이 풀려나가듯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 지금 이 시간을 어떻게든 참아보려 하고 있어요. 오로지 나를 위해서 말이에요. 사라지고 싶지는 않아요. 그러고 보니 지금의 시간에 놓인 내가 잠시 가엾고 딱한 거예요. 난생 처음. 그런 기분예요. 왜 그런지 떠올려보면 그저 그날 저녁이 생각이 나요. 눈앞은 온통 푸름, 어둠으로 가는. 아주 가는 바람이 불어오고, 당신의 하얀 이마를 가로지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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