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구름의 이름은 뭘까요,

삼키게 되는 질문이 있다. 이 질문이 그렇다.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으니까, 나는 이 질문을 자꾸자꾸 삼킨다. 물론 물어보게 되는 사람도 있다. 대답을 해줄 것 같아서.

 

예를 들면, 대기과학과 심모 박사님. 요즘은 아예 연락이 없는 분이지만, 그분은 다 알 것 같아서 물어보았다. 물론 아주 근사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게다가 그분은 절제를 아시는 분이어서, 더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는 미덕까지 보이셨다. 멋진 분이다. (이 글 보시면 연락주세요.)

 

하지만 대기과학과가 아닌 이상에야, 구름을 보고 정확하게 대답해주는 경우는 없다. 대개는, 양떼구름, 뭉게구름, 비행운 등등으로 얼버무리거나 별 관심 없다는 투로 대답한다. 관심이 있다고 해도, 알 수 없으니 대개 웃음으로 끝나고 만다.

 

그러다 보니, 지식이 좀처럼 쌓이지 않는다. 공부를 하면 되려나 싶어서, 검색도 해보고 책도 한두 권쯤 사서 읽어보는 척도 해보았다. 그런데 나는 잘 모르겠다. 이게 저건가 하고 비교를 해보려 노력하지만 사진 혹은 그림과 똑같은 구름이, 내 눈에는 하나도 없다. 대충 비슷한 것들은 있지만 비슷하다고 같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이따금 생각한다. 내 질문이 돌아 돌아서 나에게로 오지 않을까. 저 구름의 이름은 뭘까요, 하고 나에게 누군가 묻게 되는 순간. 그러면 일단 안심을 하겠지. 나는 대답을 해줄 거라고 믿어주는 거니까. 그 다음은 대답 차례인데 나라고 별수가 있나 싶었지.

 

그래서 늘 연습하곤 한다. 미래의 대답을 위해서. 저건 어젯밤 남은 구름이군요, 저건 원래 모자구름이었어요. 지금은 모자챙만 남았네. 저 구름은 오늘 아침에 막 태어난 구름이죠. 아직 뭐가 될지 몰라요. 우리는 신생아 구름이라고 하죠. 저건 굴튀김구름인데...

 

누군가가 물어보기나 하면 그렇다는 거고 사실 내게 이렇게 물어볼 사람은 없으니까 지금은 뻔뻔하다. 막상 누군가 내게 물어본다면, 참 곤란하겠다. 얼굴이나 빨개지고 아무런 말도 못하겠지. 그래도 어이없는 사람이네요 당신은.하는 표정은 짓지 않을 자신 있다.

 

방금 누가 소식을 보내왔다. 소나기가 온다고. 저쪽은 해가 이쪽은 먹구름인데-. 아 좋고 멋진 일이다. 그 먹구름의 봤으면 좋겠다. 그 먹구름 내가 좀 아는 녀석일 것 같은데. 자신있게 이름을 불러주고 반가워해주면 여기도 시원하게 비 좀 내려줄 텐데.

 

오늘은 여름, 지금은 오후다. 여름은 구름의 계절. 더워도 마냥 좋은 때. 저 구름의 이름은 뭔가요,하고 묻기도 정말 좋지. 해가 지고 밤이 와서 깜깜해지기 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전에 누군가에게 물어봐야겠다. 그런데 또 한편, 구름에 이름 따위 없으면 좀 어떤가, 싶기도 하고 그렇게 변덕을 생각하다가 저녁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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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거리, 2003년 초여름.

그런 구름과 그런 날씨는 이번 생에 더 없을 거였다.

벌써 알고 있었다. 그 예감은 맞았다. 지금껏 나는

그런 구름과 날씨를 다시 보지 못했다. 굉장해.

그렇게 말한 건 아마 나였을 것이다. 굉장해. 정말.

 

2003년 암스테르담, 네덜란드의 거리 그리고 초여름.

우리에겐 우산이 없었다. 그래서 젖어가고 있었다.

우리뿐 아니라 거리의 모든 게 젖어가고 있었다.

사방에서 비가 날아들었다.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아.

맞다. 바람을 잊고 있었다. 그때 우리의 머리카락이 날린다.

j는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목이 마른 사람처럼.

비가 그렇게 오는데도, 바람이 그리 불어대는 중에.

그리고 다른 한 사람 c씨는 담배를 피웠다. 아닌가. 글쎄.

 

네덜란드 2003년 초여름의 암스테르담 거리.

세상에. 나는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거였다.

그것을 이제야 깨닫다니. 그런 구름, 그런 날씨, 그런 바람.

지금도 모든 게 선명하다. 그때는 그리운 게 없었다.

슬픔도 사라졌다. 아무렇게나 살고 있었지만, 아름다웠다.

우산이 없는 우리들도, 젖어가는 우리들도, 날리던 머리카락도

이제는 없다. j, 그랬기 때문에, 그토록 많은 사진을 찍었나.

그때의 내가 c씨의 담배를 얻어 피운다. 굉장해 정말. 굉장해.

 

바람에 날리는 비닐봉지, 노래를 부르던 흑인, 처마 밑에서 만난 눈이 선한 노인. 빗방울들, 너무나 사랑스러운 그 작은 투명, 네덜란드의 초여름, 암스테르담 거리. 그리고 2003년 초여름의 엽서와 우리들. 비틀린 채 아름다운 구름, 모든 것을 어둡게 만들어놓은 구름, 이마에 얹고 아직도 지우지 못한 구름. 굉장해 정말 굉장해. 그래서, 그다음엔 어떻게 되었나. 우리들은 어디로 갔지. 어디로 걸어갔지. 그날 저녁에 우리는 무엇을 먹고, 어디서 잠들었을까. 기억나 j? 기억해요 c? 다들 말이 없다. 셔터를 눌러대느라, 담배를 피우고 있느라.

 

아무튼 굉장해.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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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무얼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얼해도 그저 딴짓을 하는 것만 같습니다. 어떤 것을 써도, 어떤 것을 생각해도 말이죠.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일을, 이를 테면 아홉 시까지 출근을 하기 위해서 일곱 시 삼십 분에 일어나는 것 같은, 하고 있어도, 마음은 여기 있고 몸은 다른 곳에 있는 그런 기분입니다. 그 반대일 수도 있죠. 그러니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하고 있지만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셈이죠. 나는 이 세계에 없는 사람. 살 것도 살아온 것도 없는 것만 같은.

슬럼프는 아니에요. 왜 아닌지 정확하게 대답할 수는 없지만, 슬럼프라고 하기엔 억울해요. 나뿐 아니라, 나의 이 알 수 없는 상태에 의해 손해를 보고 있을 누군가, 있겠죠 분명,에게 역시 그러할 겁니다. 매 순간 정신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정신을 차리는 순간엔 예전처럼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최근 너무 많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실제로 너무 다른 일들을 다양하게 하고는 있습니다만, 아무 일도 못하고 있으니 그 일들로 정신이 없었던 적은 사실 없습니다. 그 일들의 바쁨으로 인해 지친 적이 없다는 이야기이고, 그러므로 일을 못하기는켜녕 제대로 해본 적도 없다는 이야기. 핑계가 될 수 없죠. 그럼, 그냥 단지 조금 슬픈가. 슬픈 건가. 감정의 치우침으로 이렇게 된 건가. 글쎄. 하지만 그건 언제나 그랬는걸. 그러니까,

지금 기분은 꼭 구름 같다고 생각해봅니다. 구름. 창백한 하늘 위로 사라지려는 구름. 아주 희미하고 실낱처럼 보이는 그런 구름. 살짝만 움직여도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그런,


문득, 당신의 머리카락이 떠올랐습니다. 그날은 아주 적절한 저녁이었고, 모든 것을 푸름에서 어둠으로 변해하고 있었죠. 당신의 머리카락의 일부를 바람이 매만지다 말았아요. 그때, 살짝, 이마 위로 지나간 어떤 근심. 그리고 그 근심을 대신 보여주기라도 하듯, 당신의 하얀 이마를 가로질러 속눈썹에 닿아 있던, 그렇게 걸려 흔들리는 머리카락 한 가닥. 나는 어김없이 그런 당신을 훔쳐 보고 있었죠. 당신의 머리카락을 보듯이, 가볍게 가벼운 척하면서. 당신은 아주 작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어요. 나는 당신의 근심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면서 그런 당신의 침묵을 따라하고 있었죠. 모든 것이 점점 투명해집니다. 그때의 당신과 나. 나는 당신 눈앞에서 내가 투명해지고 투명해지다가 결국 사라질까 봐 두려웠어요. 그렇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그런 공포가 나를 휘감고 있었어요.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죠. 할 수 있는 것도 없었지만, 하고 싶은 것도 없지만, 머리카락은 가늘고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고, 그것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 그 이유만으로 내게 얼마나 아름답게 보였는지요.

나는 그때 당신의 이마를 가로지르는 한 가닥 머리카락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부드럽게 쓸어올려주고 싶은 마음으로 지금을 살아가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나에 대한 애정이라곤 손톱의 끝만큼도 없는 사람이지만, 맥없이 풀려나가듯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 지금 이 시간을 어떻게든 참아보려 하고 있어요. 오로지 나를 위해서 말이에요. 사라지고 싶지는 않아요. 그러고 보니 지금의 시간에 놓인 내가 잠시 가엾고 딱한 거예요. 난생 처음. 그런 기분예요. 왜 그런지 떠올려보면 그저 그날 저녁이 생각이 나요. 눈앞은 온통 푸름, 어둠으로 가는. 아주 가는 바람이 불어오고, 당신의 하얀 이마를 가로지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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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을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울었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소리를 질렀고 나는 자꾸 걸음을 멈추었던 흐린 저녁이었습니다. 깨진 눈이 비와 섞여 내리고 공중은 끝없이 어두워져가고 어디서나 나뒹굴던 차가운 바람. 가시질 않는 구름. 그때 나는 당신을 사랑했지요.

그 거리의 끝에는 음반가게가 하나 있었습니다.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빛바랜 파란색 위에 흰 글씨 간판이 있었지요. 당신은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감탄하며 그 바래버린 파란색이 참 좋다고 했습니다. 나는 잘 몰랐지요. 지금은 알 수 있을까 싶어도 그때는 아직 있던 그 가게가 이제는 없고, 떠올려보려 할수록 자꾸 그날만 기억납니다. 음악이 나오고 있었지요. 그해 가을에 죽었다는 한 가수의 노래였습니다. 나는 그 가수를 무척 좋아했었지요. 손가락이 너무 슬프고 추워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때, 우리는 조금 막막하게 떨어져 더는 세상에 없는 그 가수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자니 어땠는지요. 나는 당신에게 가까이 갈 수 없고, 눈들이 자꾸 얼굴의 이곳과 저곳에 달라붙어, 눈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들 때문에 눈만 깜빡이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세상에 더는 없는 것이 우리일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잘 보이지 않았지요. 당신도 나처럼 젖어가고 있었겠지요. 당신도 지쳤겠지요. 지쳐서 더 움직일 생각도 들지 않았겠지요. 내가 잘 보이지 않았을 게 분명합니다.

우리는 점점 어두워져갔겠지요. 이따금 지나가는 사람들이 당신과 나를 번갈아 돌아보며 바삐가던 장면이 선명합니다. 나도 당신과 행인이 선명하게, 멀게 때론 너무 가깝게 보여 나는 지금 한숨을 쉽니다. 그날 그 가수의 노래는 지금도 잘 듣고 있습니다. 당신도 없이, 그의 노래는 여전히 깨진 눈발처럼 달려듭니다. 그날 왜 그렇게 우리는 슬펐던 것입니까. 구름으로 가득한 그 저녁을 왜 간신히 버티고 서서 돌아서지도 마주 대하지도 못했던 것입니까.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저 서러웠던 그 거리, 당신과 나 사이에 허름하게 걸려 있던 말들만 더듬댈 뿐입니다. 언제나 기억해야 하는 지난 시간은 그러한 것입니까. 당신은,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러니까 그때 나는.

다시, 그날의 기억은 그저 깜깜한 곳만 따라 걸어가던 내가 있고, 대꾸가 없는 당신이 있는 곳에서 멈추고 그 다음을 내내 모릅니다. 그저 완전히, 가리워지는 것이 어디 있을까요.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좀 나았을까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벌써 몇 해의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어가는 지금에도 아직도 깨진 눈이 비와 함께 흩날리고 죽은 가수의 음악이 들리는 골목이 있습니다. 나는 이따금 그리로 찾아가 한참 남아 있는 듯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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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신의 아침 위로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당신의 귓가를 떠돌고 당신은 아직 잠이 들어 있으면 좋겠다. 당신의 창문 위로 빗물들 방울져 맺혀 있을 때, 아직 깨지 않은 당신이 꿈을 꾸고 있었으면 좋겠다. 당신, 그 꿈속에서 환한 이마를 창에 대고, 비가 내리는 창밖을 보고 있다면, 그 창밖으로 난 젖어가는 길 위로 같은 색의 우산을 쓴 남자와 여자가 엇갈려 지나가고 있다면, 당신은 그들이 혹시 잘 알고 있는 사이가 아닌지, 지난한 연애를 마치고 이젠 지난 연인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아닌지 생각하고 있다면, 그래서 그들, 서로 멀어져갈 때, 당신 마음 위로도 봄비가 내리고 있다면 좋겠다. 자꾸 아득해져서 당신, 간신히 돌아눕고 그제야 간밤의 느리고 느린 침묵이 천천히 눈을 뜰 때, 그때에도 비가 내리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당신이 빗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혹시 그때, 나는 당신의 근처에 있는 것은 아닐까. 우연히, 아무것도 모른체 그런 것은 아닐까. 알 수 없이 자꾸 걸음을 멈추고 싶고, 쓰고 있거나 쓰고 있지 않은 우산을 뒤로 기울인 채, 그것이 뭔지도 모르면서 자꾸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익숙하지만, 도무치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감정에 휘말려서 슬퍼지려 하거나, 슬퍼져버리는 것은 아닌지. 그때 문득 당신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아닌지. 당신이 아침 비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노력하여 지웠던 사실을 순식간에 기억해내는 것은 아닐지. 그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아니 사실 이것도 궁금하지 않지. 나는 상념과 상실과 그럼에도 따뜻해지는 마음 위를 떠도는 봄비를 문 구름이 된 기분이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든지 간에. 젖고 있지만 젖지 않은 채.

그러나 당장은 이 끝나가는 겨울의 한 모퉁이에 있다. 흔들리는 자리를 확인하며, 자꾸 이마가 아프다. 창문에 이마를 댄 채 있는 것처럼. 그렇게 같은 색 우산을 쓰고 엇갈려 지나가는, 한 남자와 여자를 보고 있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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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당겨 웃게도 하고 끌어 쏟게도 하여 내 안의 물이 움직인다. 중력을 따라. 그러나 당신은 그저 고요하고 고요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음을, 침묵을 지키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당신은 눈부시지 않다. 부끄럽게 그러나 기꺼이 맨 얼굴을 드러낸다. 거기 빛이 있다. 당신의 것은 아닌데, 나는 당신의 것이라 믿고 그렇게 부른다. 매혹된다.

당신은 내게만 보이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각자의 당신을 가지고 있고, 서로 다른 것을 같다고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

당신이 보였다가, 보이지 않는다. 그건 당신의 의지도 아니고 나의 의지도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당신을 보지 못하고, 나를 보지 않는 혹은 못하는 이 상황이 너무 어둡고 깜깜하다.

당신의 빛이 떠올라 있다, 나는 그것을 한참이나 바라본다. 당신이 아닌 줄 알면서도 당신 인 것 같아 발을 담그면 일렁이며 흔들리는 당신이다. 바람이 여태 차다.

당신은 오늘밤에도 있구나. 보여도 보이지 않아도 당신은 있구나. 어떤 때는 슬프고 어떤 날은 기뻐하면서, 나는 차오르고 또 사그라드는 시간을 세어본다. 어떤 날은 힘들게 온다. 올 것임에도 오지 않을 것처럼. 달력을 넘길 때, 손목을 올려 시간을 확인할 때.

당신이 다정하다. 오늘은 그리 비쳐보이는구나. 언제나 차갑게 보이던 당신이, 이슥하고 아늑하다. 나는 울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울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면서 쓰다듬으면서.

당신이 나를 재우겠지 오늘도, 음악처럼. 그래 그러고 보니 당신은 음악이기도 하구나. 채 잠들지도 못한 나의 꿈속에 찾아와 비단처럼 깔리는구나. 돌아누워도 들린다.

당신 아래, 아침이 올 것인데, 나는 먼저 깨어 배웅하고 싶다. 당신을 그런 당신을. 안녕, 안녕. 하면서. 그렇게 당신의 고요처럼 담담한 당신의 잠을 배웅하고 싶구나. 늘 그렇듯.

바람이 분다. 당신의 한숨인가 보다. 그 한숨이 다 나였으면 좋겠다. 더 바랄 것도 없겠다, 그러면 나는 젖은 채 이 밤을 다 보내도 좋겠다. 당신만 보면서.





밤이 가고 있다. 둥글게, 새침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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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믿을 것 같진 않지만, 구름에서 시작된 일. 서늘한 어느 봄날 밤. 구름이, 정말이지 아슬아슬해보일 만큼 작은 구름이 있었네. 달의 곁으로 가고 있는지 아니면 도망친 건지 모르지만, 달빛 가까운 곳에서 더 가지도 오지도 않고 그만큼 거기에 있었네. 그런 구름을 볼 때면, 혹시 저 구름을 나만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조바심이 나고, 그 구름이 네게도 보이는지 어떤지 궁금해서 알려주고 싶어지는데. 하지만 네게는 알려줄 수가 없고, 그러니 딱 작은 구름만큼 나는 안타까워하지.

그래서 나는 서둘러 사진기를 찾고, 흰 종이를 찾고, 잘 써지는 펜을 찾다가 아니야, 아니지, 하고 연필로 마음을 바꾸고 그 생각 곁에 지우개도 하나 내려놓는 것이네.

그 아슬아슬한 작은 구름을 네게 보여주어서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얼마나 다정한 마음이 되는지는 생각도 하지 않지. 언제나 그렇지, 그냥 그러고 싶은 거야. 여기 구름. 하고 서툴게 써놓은 문장이나, 흔들린 사진을 보여주고 기대에 차서, 네 눈을 보고 싶었던 거겠지. 더 가지도 않고 더 오지도 않는 그 구름의 형상과 속내를 슬쩍 젖은 달빛에 기대어서 나는 건네고 싶었던 거였네. 네게, 그만큼 내게.

구름은 기다려주지 않지. 귀도 없고 눈도 없으니. 어쩌면 마음도 없어서. 특히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작은 구름은 언제나 그렇네. 잠시 눈을 떼면 사라지는 장면.

그 작은 것 하나 사라졌을 뿐인데, 밤이 다 텅 비어버리고, 서늘한 어느 봄밤 더없이 추워져 나는 창문을 닫아야 하는 것이네. 어째서 창문을 열었는지, 어쩌다 창밖을 보았는지 그런 것은 기억도 하지 못하고, 그냥. 그냥 하면서, 흰 종이 위엔 길고 짧은 선을 남겨놓고 아무것도 쓰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처럼 접어서. 그렇게 차츰 또 차츰 나는 희미해지고, 그제야 알게 된거지. 이것은 모두 구름에서 시작된 일. 별로 믿지 않겠지만, 어쩌면 믿고 싶지 않겠지만. 봄밤에 사라진 구름과 에두르지도 못하는 마음과 그렇게 얻은 병.

너는 여태 모를 일이지. 그러니 믿고 믿지 않고 할 일이 또 무어겠는가 싶기도 한 것인데, 어쨌건 내겐 더없는 일. 내가,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아슬아슬해진, 어쩌면 이미 사라져버린 아무에게도 그러니 네게도 보이지 않게 되어버린 그런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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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좋아하는 사람을 안다. 아침, 눈을 떴을 때 비가 오면 그녀는 창가에 바짝 붙어서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비를 구경하곤 했다. 창문을 닫아놓고서, 그게 어디 보이기라도 하겠는가. 그러니 창문을 활짝 열고서, 봄이든 여름이든, 가을이나 겨울도 관계없이 그렇게 하고서 비가 오는 것을 넋을 놓고 보았다. 그리하여 감기에 걸리고, 콜록거리며 며칠을 앓았던 적도 있었다. 도대체 왜 감기에 걸린 것이냐고, 내가 물었을 때, 그녀는, 비를 보다가 그랬어, 이렇게 말하지는 않고, 후후, 하고 웃었던 것인데. 나중, 나중에야 나는 그녀에게 그러한 버릇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때의 병증을 이해하며 아파하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그녀가 비 맞기를 즐겼다, 오해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그냥 작게 때로 세게 내리는 비 보기를 즐겼던 것뿐이다. 먹장구름 아래, 날리거나 쏟아지는 비, 부옇게 밝은 낮에 기습처럼 내리는 비. 그녀는 비의 종류나 형태를 차별하지 않고 좋아했었다. 언젠가 딱 한 번, 유독 비가 드물어 가문 어떤 가을에 그녀가 내게 (아마 취해서였던 것 같은데 정확하지는 않다. 그녀는 좀체 술을 마시는 법이 없고, 설령 있다고 해도 취할 정도로는 마시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자꾸 어떤 사람이 기억난다고. 그래서 좋다고. 그 어떤 사람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사실 짐작가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애써 모른 척했을뿐더러, 확인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다음 그녀는 몇 마디인가 말을 더 이어붙였는데 (바로 이 대목에서나는 그 혹은 그녀가 술에 취했을 거라 짐작하는 것인데) 나는 그 말을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한 것이다. 아니 사실 이건 나의 심리 탓일 수도 있다. 고백하자면, 그때 나는 그 혹은 그녀를 무척 좋아했었다.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늘상 잠이 부족하여 견딜 수 없으면서도 나는 그녀를 찾아가거나, 대화했고, 부족하면 부치지도 못할 편지를 쓰기도 했었다. 그런 그녀가 떠올리는 어떤 사람에 대해 들어줄 수 있을 만큼 나는 넉넉한 사람이 못되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는 못할 테지만, 지금은 조금이나마 포기가 늘었으니까. 그녀는 불행하게도 그나마의 지금 나를 만나지 못했고, 그래서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털어놓지도 못하였다. 나는 버리듯 그녀를 떠나 어두운 골목을 따라 혼자 집으로 돌아갔는데, 달도 별도 없이 온통 구름만 가득한 밤인마냥, 그 길은 어둡기만 했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새벽쯤, 열과 한기에 놀라 퍼뜩 깨어났을 땐, 창밖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블라인드로 가려진 창문 너머로 빗소리가 들리고 있었으니 알 수 있었다. 창문 아래 난간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들, 방의 깊은 안쪽 너머로 튕겨지듯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나는 아팠다. 마음이 몸에 부대껴, 몸이 마음에 부대껴 열이 났었다. 그 어떤 사람을 내가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그 새벽을 끙끙거리며 혼자 앓았다. 앓으면서 생각했다, 내 생각을 했을까 잠시라도. 며칠이 걸렸을까. 침대에 누워 흘리듯 보낸 그 며칠 동안 얼마나 원망을 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나는 그녀와 연락하지 않았다. 그녀로부터 몇 번인가 연락이 왔었지만, 나는 그 연락을 받지 않았다. 병은 대개 나아지는 법이라서, 나는 하루, 또 하루 보내면서 나아졌다. 아니 묻었다. 앓은 뒤엔 배운다고 하던가. 그 말이 맞는지 어떤지 모르지만, 나는 그녀에 대해 잊는 법을 묻어버리는 법을, 그 며칠간의 투병 끝에 배우게 된 것이었다. 더는 밤에 잠이 오질 않거나, 비가 내리는 풍경에 마음이 무너질 필요도 없었다. 시간은 그렇게 가는 법이라서 한달, 일 년, 이 년. 누가 그녀의 이야기를 꺼내도 적당히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게 되었다.


세상은 그리 넓지 않지만, 그만큼 좁지도 않다. 우연히라도 나는 그녀를 본 적이 없다. 그녀 쪽에선 모르지. 먼 곳에서 나를 보았는지도. 그때 등을 돌렸는지,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는지 혹은 망설였는지도 모른다. 이따금 비가 내릴 것 같으면 나는 피할 수 없이 그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비는 등을 돌리건 그 자리에 멈춰 서건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어떤 식으로는 젖게 된다. 또 이건 좀 어쩐지 치사한 방법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살면서 어떻게, 비를 피한단 말인가. 그러니 어쩌면 평생 생각하고 살라고, 내게 부린 투정 같은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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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은 따뜻한 공기가 모여 만들어진다. 그들이 따뜻하고 포근해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가 그 안에 폭 담겨 쉬고 싶어지는 까닭도.

구름의 내부에는 아주아주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 있다. 물방울들이 너무 작아, 둥글게 둥글게 떠올라 있다니. 나는 그런 상상만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물방울들, 모여 조금씩 커지고 자라면, 빗방울이 되고 눈송이가 되어 우리의 곁으로 내려온다. 마치 마음에 차오르고 차오른 감정들이 눈물이 되는 것처럼.

그렇게 떨어지는 비와 눈을 맞는 것은, 그러니까 구름 속을 걷는 것과 같은 일. 내가 구름을 사랑하고 너는 비를 사랑하는 것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제야 배운다.




구름은 빛을 먹고 하얗게 빛난다.




한편 별들이 모여 구름을 만들기도 한다. 성운(星雲)이라 한다. 성운은, 빛방울들이 만드는 구름이다. 태양들로부터 빛을 받아 환해지는 밤의 구름들.

물방울의 비좁은 간격이, 별과 별 사이의 거리가 구름을 만든다. 얻은 빛과 열을 서로에게 전하면서. 너와 나의 간격처럼. 사이가, 아름다운 것 하나를 만들어 띄우는 것이다.

구름들은 말이 없다. 서로서로 바라보기만 하다가 이따금 부둥켜 안는다. 그렇게 쏟아져내린다.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하면서. 아니 그렇게 되어 있다. 너와 나처럼. 슬플 것 없다.

아득하 시간이 천천히 부유한다. 어디에 닿을지 어떻게 소멸한지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구름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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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더 높은 곳에서 춤추게 되면 싸락눈으로 변합니다.
 구름의 과정을 통해 다시 땅으로 돌아오는 거죠.“
-영화 「하나 그리고 둘」


우리는 말이 없었다. 제법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었으니, 대화 없이 오래 마주할 수 있었다. 후배 앞에 놓인 잔에 얼음이 거의 녹아버렸다. 할 말도 없으면 우리는 그렇게 종종 만나는 사이였다. 빈 곳을 메꾸는 성격의 나와, 채워진 것을 비우는 후배는 잘 어울리는 것도 같고 전혀 그렇지 않은 것도 같은 사이여서 둘은 사귀는 게 좋겠다는 조언 같은 것도 참 많이 받았다. 그때마다 나와 후배는 화를 내는 척하면서 웃었다. 정말로 그럴 수는 없겠다고 나는 생각했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침묵을 지킬 때가 더 많았다. 그러면서도 서로, 무슨 생각해,라고 물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실제로 그랬는지, 아니면 그냥 방금 그렇게 꾸며 생각해버리게 된 것인지는 둘이 만나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하지만 막상 만나면 그런 얘기는 잊을 것이 분명하다.

선배 구름은 얼마나 살까요. 나는 후배가 바라보는 곳을 따라 뒤통수쯤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대충 보아도 대여섯 점은 족히 넘을 구름이 흩어져 있는 초여름 하늘이었다. 그것 중 어떤 것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인지 가늠도 못하면서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충 대답했던 것 같다. 한두 시간, 뭐 이렇게. 후배는 그런 나의 건성에는 전혀 반응하지 않고 다른 질문을 덧붙였다. 구름은 한 번에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바람의 세기와 방향에 따라 다르겠지. 그때처럼 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아니 그 질문을 들은지 한참인 지금까지 여태 아무 생각이 없었던 거지. 후배는 역시 내 건성과 무성의함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저 구름을 얼마나 멀리서까지 볼 수 있을까. 반대쪽에 가면 다른 모습으로 보이기도 할까. 동시에 다른 곳에서 같은 구름을 촬영하면 어떨까. 그게 가능할까 등등의 질문들을 함꺼번에 띄워놓고는 입을 다물었다. 나 역시 몇 번인가 진지하게 때론 농담으로 대답을 하다가 관두었다. 분명 그랬을 것이다. 나는 잘 몰랐고, 노력한다고 다르게 대답할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어쩄든.

후배는 멀리 떠나기로 되어 있었다. 유럽이었다. 영국으로 갔다가, 거기서 몇 달, 그리고 남유럽을 따라 돌다가, 헝가리에서 몇 년 체류한다고 했다. 무슨무슨 지원을 받아 가지만 내키면 이렇게 저렇게 눌러앉을 수도 있는 방법도 있다고 했다. 아쉬웠으나, 섭섭하지는 않았다. 절절함 잔뜩 묻혀 가지 마라, 말릴 나이가 아니었다 나는. 후배 역시 말린다고 가지 않을 나이가 아니었고. 헝가리. 가본 적이 있었지만 별 다른 감흥이 없는 나라. 부다페스트는 아니라고 했다. 나는 부다페스트에만 며칠 묵어본 적이 있었고. 해줄 말이 없어서, 누구나 다 아는 얘기 몇 마디해주고 말았었다. 부다페스트의 구름은 말이야, 좀 견고한 느낌이야. 좀처럼 흩어지지도 않고, 잘 웃지도 않아. 무뚝뚝하지. 뭔지 알지 그런 구름? 가면 너 아마, 여기 구름이 못 견디게 그리워질걸. 무척 무척. 후배는 말이 없었다. 그냥 앞에 놓인, 얼음 녹은 물만 남은 잔을 휘휘 저었던 것 같은데 이 역시 내가 아닐지도 모른다. 내게는 그렇게 꾸며 기억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 아무튼 그렇게 기억하는 까닭은, 그때 후배가 말도 못하게 쓸쓸해보였기 떄문이 아니었을까 이제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얼마 뒤, 후배는 정말 떠났다. 그렇게 떠나던 날에야 나는 조금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금세 잊어버렸다. 대개 그렇지 않나. 빈자리는 이상한 형태로 지워지거나 잊히거나, 다른 것으로 채워진다. 그 하나하나를 다 기억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랬다간,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터져버릴지도 모를 일이지. 후배에게는 엽서 한 장 오질 않았다. 하지만 나는 후배가 아주 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차피 우리는 별 말하지 않고 오래오래 마주 앉는 사이였다.

그러나, 초여름, 그 계절. 나는 구름을 보면 어쩔 수 없이 부다페스트의 구름들이 궁금해지곤 했다. 말도 없고 절대 친절할 수 없는 그런 구름. 후배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러다 불쑥, 우리 서울 하늘 어떤 구름 아래서 불쑥 만나는 거 아닐까. 그러면 우리는 또 마주앉아서 오래오래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후배는 가기 전에 이렇게 말했었다. 선배, 구름이에요. 구름. 다 그렇지 않아요? 그러고 보니, 이제는 말해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사실, 찾으려는 노력도 없긴 했었지. 구름이면 다행이다. 구름이 되기만이라도 한다면 말이지. 잘 지내지? 잘 지낸다 나는. 이제 그만 와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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