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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경주 시집 『시차의 눈을 달랜다』(민음사, 2009) 중「하루도 새가 떨어지지 않는 하늘이 없다」 2009.12.23

 

 

 

시 때문에 죽고 살 일은 없었으면 하는데
자꾸 엄마는 시를 놓으라고 울고 나는 고양이를 울린다
자꾸 시 가지고 생활을 반성하는 놈 좀 없었으면 하는데
시 때문에 30분을 책상에 앉아 있다가도 참혹해지고
시 한 편 발표하고 나면
몰래 거리에 쓰레기 봉지를 두고 온 기분이 든다

시 때문에 살 일 좀 생겼으면 하는데
사형수가 교수대를 향해 걸어가면서
뒤따라오는 간수들에게 갑자기
자꾸 밀지 말라고 울먹이는 광경처럼

밀지도 않는데 떠밀리고 있다는 느낌으로부터

시만 짜서 이대로 생활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

시 때문에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
오래 시 안 쓰다가 다시 쓴다는 놈 생각
좀 하고
다시 쓴다는 놈치고
세상의 속물 다 겪은 후 오만하게 돌아온 것 못 봤다
그게 시의 구원이라면
시 때문에 형편없는 연애라도 그만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도 해 보지만
시 때문에 죽어서도 까불지 못하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따지고 볼 것도 없이 신파란
내 쪽에서 먼저 부러우면 지는 법이다
이기고 지고 살 일도 아닌데 시 때문에
이름 없는 무덤 옆에 가서도 잠도 자 보았다

시 때문에 울먹이는 일 좀 없었으면 하는데
하루도 새가 떨어지지 않는 하늘이 없다

김경주, 『시차의 눈을 달랜다』(민음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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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려고 침대에 누워 경주 형의 시집을 얼핏, 펼치다가 보고 적는다.

따뜻했던 저녁이 추운 밤이 되고 아까는 문득, 그런데 춥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morteble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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