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1_베란다

from Un_post/동네 2011. 2. 18. 12:37

 

 

 

 


맑은 날이면, 멀리까지 보였다. 나는 창밖을 좋아했다. 동네에서 제일 높은 언덕에 아파트가 있었다. 우리 집은 그중 가장 높은 층이었다. 창문이 있었다. 뽀얀 햇빛이 넘어왔다. 가는 눈을 뜨면 부유하는 먼지들이 보였다. 먼지의 시간은 늘어지고 늘어져 영원으로 가는 것처럼 보였다. 한 번쯤은 먼지가 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기억은 없지만,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엎드리는 것을 좋아했다. 장판의 무늬들이 좋았다. 그곳에 어떤 세계를 꾸미는 것이 좋았다. 장판 위로 물이 흐르고, 도로가 생기고, 왕국이 세워졌다. 무늬 하나하나를 그 틈과 작은 상처들을 외울 때까지 놀다 보면 저녁이 되었다. 까치발을 들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나라에서 제일 높다는 빌딩이 새끼손톱만 하게 보였다.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동네와 옆 동네와 먼 동네들의 아스라한 집들 나는 사랑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렇게 오랫동안 창밖을 바라보지 못했을 거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그늘이 닿아 벌써 어두워진 집들도 있었다. 창문 너머러 하나둘 불을 올리는 그 집들에서 나는 저녁밥 냄새를 맡았다. 그건 우리 집 부엌에서 풍기는 냄새이기도 했다. 압력 밥솥이 돌아가고 물이 넘쳐 그 뜨거운 뚜껑에 닿아 증발하는 소리, 냄새. 그러면 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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