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시간

from Un_post/Post_post 2009. 4. 2. 23:58
나의 해골은 말한다.

"가만히 있는 것. 가만히 누워 지나간 일을 생각하는 것. 누워서 쏟아지는 햇볕을 계산하는 그런 것."

덜그럭거린다. 몸 전체가. 아니 일부가. 오래전부터 나는 미결의 문장들을 혐오했다. 모든 혐오가 그러하듯 나는 그 길을 따라 갔다. 모든 아픔들을 혐오했다. 습관처럼 그 아픔의 길을 따라 병들어갔다. 멈춰서는 길목에는 잊지않고 뼈를 뿌려두었다. 다시 내가 되어 태어나는 것들은 없었다. 사람은 뼈로 먹고, 뼈로 걷고, 뼈로 서서 뼈로 말하지만, 사람은 뼈, 이런 공식은 가능하지 않다. 일말의 기대는 가루가 되어 날아갔다. 먼 바다까지.

오늘은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현관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어느 날 나와 같은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면. 나는 나에게 돌아오는 모든 배신을 그에게 건네어 주고 저 문을 나갈 수 있을텐데. 저녁빛이 흐릿하게 계단에 서렸다. 계단의 일부가 흐릿한 빛을 따라 한 칸씩 걸어올라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소리의 투명한 뼈를 상상할 수 있었다. 그건 괴로운 일이었고, 두 손으로 흔들리는 머리를 부여 잡았다. 사라지려는 생각들을 붙들 수 있다는 듯이.   

나의 해골은 대답한다.

"네가 보는 것은 사라진다. 나는 믿는다. 단 한 번의 표정, 단 한 번의 목소리, 단 한 번의 소멸, 그런 것들을 우리는 운명이라 불러야 한다. 모든 것은 한 번에 찾아오고, 영원히 잊히지 않는다. 다만 어떤 경우에는 감각할 수 없다. 소멸이란 불멸이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이름이다. 들으라. 사라지지 않는 것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믿는다. 나의 머리에도 구멍이나고 흙으로 메꾸어져 천천히 몸을 들어 올리는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것이 하얀색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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