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에 해당되는 글 2건

  1. 구름관찰기 9 죽은 가수의 노래 2014.03.06
  2. 구름관찰기 8 아침 비 2014.03.01




그날을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울었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소리를 질렀고 나는 자꾸 걸음을 멈추었던 흐린 저녁이었습니다. 깨진 눈이 비와 섞여 내리고 공중은 끝없이 어두워져가고 어디서나 나뒹굴던 차가운 바람. 가시질 않는 구름. 그때 나는 당신을 사랑했지요.

그 거리의 끝에는 음반가게가 하나 있었습니다.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빛바랜 파란색 위에 흰 글씨 간판이 있었지요. 당신은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감탄하며 그 바래버린 파란색이 참 좋다고 했습니다. 나는 잘 몰랐지요. 지금은 알 수 있을까 싶어도 그때는 아직 있던 그 가게가 이제는 없고, 떠올려보려 할수록 자꾸 그날만 기억납니다. 음악이 나오고 있었지요. 그해 가을에 죽었다는 한 가수의 노래였습니다. 나는 그 가수를 무척 좋아했었지요. 손가락이 너무 슬프고 추워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때, 우리는 조금 막막하게 떨어져 더는 세상에 없는 그 가수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자니 어땠는지요. 나는 당신에게 가까이 갈 수 없고, 눈들이 자꾸 얼굴의 이곳과 저곳에 달라붙어, 눈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들 때문에 눈만 깜빡이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세상에 더는 없는 것이 우리일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잘 보이지 않았지요. 당신도 나처럼 젖어가고 있었겠지요. 당신도 지쳤겠지요. 지쳐서 더 움직일 생각도 들지 않았겠지요. 내가 잘 보이지 않았을 게 분명합니다.

우리는 점점 어두워져갔겠지요. 이따금 지나가는 사람들이 당신과 나를 번갈아 돌아보며 바삐가던 장면이 선명합니다. 나도 당신과 행인이 선명하게, 멀게 때론 너무 가깝게 보여 나는 지금 한숨을 쉽니다. 그날 그 가수의 노래는 지금도 잘 듣고 있습니다. 당신도 없이, 그의 노래는 여전히 깨진 눈발처럼 달려듭니다. 그날 왜 그렇게 우리는 슬펐던 것입니까. 구름으로 가득한 그 저녁을 왜 간신히 버티고 서서 돌아서지도 마주 대하지도 못했던 것입니까.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저 서러웠던 그 거리, 당신과 나 사이에 허름하게 걸려 있던 말들만 더듬댈 뿐입니다. 언제나 기억해야 하는 지난 시간은 그러한 것입니까. 당신은,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러니까 그때 나는.

다시, 그날의 기억은 그저 깜깜한 곳만 따라 걸어가던 내가 있고, 대꾸가 없는 당신이 있는 곳에서 멈추고 그 다음을 내내 모릅니다. 그저 완전히, 가리워지는 것이 어디 있을까요.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좀 나았을까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벌써 몇 해의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어가는 지금에도 아직도 깨진 눈이 비와 함께 흩날리고 죽은 가수의 음악이 들리는 골목이 있습니다. 나는 이따금 그리로 찾아가 한참 남아 있는 듯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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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신의 아침 위로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당신의 귓가를 떠돌고 당신은 아직 잠이 들어 있으면 좋겠다. 당신의 창문 위로 빗물들 방울져 맺혀 있을 때, 아직 깨지 않은 당신이 꿈을 꾸고 있었으면 좋겠다. 당신, 그 꿈속에서 환한 이마를 창에 대고, 비가 내리는 창밖을 보고 있다면, 그 창밖으로 난 젖어가는 길 위로 같은 색의 우산을 쓴 남자와 여자가 엇갈려 지나가고 있다면, 당신은 그들이 혹시 잘 알고 있는 사이가 아닌지, 지난한 연애를 마치고 이젠 지난 연인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아닌지 생각하고 있다면, 그래서 그들, 서로 멀어져갈 때, 당신 마음 위로도 봄비가 내리고 있다면 좋겠다. 자꾸 아득해져서 당신, 간신히 돌아눕고 그제야 간밤의 느리고 느린 침묵이 천천히 눈을 뜰 때, 그때에도 비가 내리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당신이 빗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혹시 그때, 나는 당신의 근처에 있는 것은 아닐까. 우연히, 아무것도 모른체 그런 것은 아닐까. 알 수 없이 자꾸 걸음을 멈추고 싶고, 쓰고 있거나 쓰고 있지 않은 우산을 뒤로 기울인 채, 그것이 뭔지도 모르면서 자꾸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익숙하지만, 도무치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감정에 휘말려서 슬퍼지려 하거나, 슬퍼져버리는 것은 아닌지. 그때 문득 당신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아닌지. 당신이 아침 비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노력하여 지웠던 사실을 순식간에 기억해내는 것은 아닐지. 그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아니 사실 이것도 궁금하지 않지. 나는 상념과 상실과 그럼에도 따뜻해지는 마음 위를 떠도는 봄비를 문 구름이 된 기분이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든지 간에. 젖고 있지만 젖지 않은 채.

그러나 당장은 이 끝나가는 겨울의 한 모퉁이에 있다. 흔들리는 자리를 확인하며, 자꾸 이마가 아프다. 창문에 이마를 댄 채 있는 것처럼. 그렇게 같은 색 우산을 쓰고 엇갈려 지나가는, 한 남자와 여자를 보고 있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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