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_post/구름관찰기'에 해당되는 글 12건

  1. 구름관찰기 2 너를 기다리는 골목에서 4 2014.02.13
  2. 구름관찰기 1 시작 2013.10.11





너의 전 생애와
아직은 못다한 나의 생애 너머에서,
구름은 예전처럼 우아하게 행진을 계속하네
-비슬라바 쉼보르스카, 「구름」


오늘은 좀 춥다. 밝은 날 추우면 기분이 좋더라. 골목에 서서 코를 훌쩍이네. 너를 기다리면서. 이 골목은 좁아. 좁고 예뻐. 오는 길에 누가 버려놓은 괘종시계를 봤어. 완전히 멈춰버린 시간. 시계의 유리 덮개 위로 조각난 골목의 일부와 그 위에 떠 있는 구름이 보였어. 이제는 멈춰버린 시간. 정말 그런가 봐. 너는 아직도 오질 않네. 나는 너를 기다리고. 오늘은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작은 구름들. 그리고 멈춰버린 시간. 하지만 나는 구름을 좋아해. 너만큼. 구름이 많다면, 나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네. 너라는 당신을.

구름은 더러워지지 않아. 구름은 언제나 깨끗해. 그래서 너는 구름 같은가. 그래서 너는 구름 같은가. 그래서 나는 구름을 좋아하고, 저 구름을 너라고 생각하나. 환한 하늘 아래로, 기분 좋게 배와 가슴을 드러낸 구름이 흘러가고 있네. 부드럽다. 희고. 그리고 사랑스러워. 그런데 너는 안 오고, 나는 기다리고, 시계는 여전히 골목의 한쪽을 노려보고 있어. 괜찮아. 지금은 너를 기다리는 시간. 너의 구름이 흘러가는 이 골목은 너의 것. 나는 너를 기다리는 사람. 어쩌면, 너는 벌써 오면 안 되는 게 아닐까. 나는 더 너를 기다리면서 여기서.

오늘은 좀 춥고 밝은 날. 괘종시계가 정오를 알려주네. 골목을 따라 울리는 시계 종의 따뜻한 소리. 유리 덮개 위로 보이는 골목들이 조금씩 조금씩 흔들려 골목을 넓히고 완전히 멈춘 시간 속에서 흘러가는 시간을 나는 사랑하네. 그리고 구름. 작고 포근한 구름, 구름들. 너와 같은, 실은 너인, 너였던, 너가 분명했던 저 조각들. 멋지다. 정말. 내가 있는 어디에나, 어느 곳에나 머리 위에는 아름답고 깨끗한 네가 있는 거잖아. 나는 멈춰버린 시간을 흘러가고 있는 시간의 골목에서, 너를 기다리는 시간 속에서, 그러니까 오직 너 안에서 너를 기다려. 그러니 너는 오지 않을 거야. 슬프고, 슬프지 않아. 나는 아직 살아 있고, 언젠가 너는 오고, 나는 너를 살고 있으니.






,

 

 


구름, 하면 모자가 떠올라 나는 한참이나 막막하다. 나는 모자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모자,하면 나는 혼자 되는 기분이 된다. 나이가 들면, 꼭 정중한 모자를 쓰고 다니고 싶다. 모자가 잘 어울리지 않는 내가 싫다. 모자가 잘 어울리는 내가 되고 싶다. 언젠간 그렇게 될까. 모자가 잘 어울리게 된 나를 상상하면 기분이 좋다. 그 모자 참 잘 어울리네 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모자가 안 어울리는 건 아마 내게 어울리는 모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명절 때가 되면 텔레비전에선 마술쇼를 보여주곤 했었다. 마술사는 모자에서 비둘기를 꺼내곤 했다. 아주 하얀 비둘기들이 커다랗게 날갯질을 하면서 모자에서 튀어나는 그 장면을 나는 정말 좋아했다. 모자 속엔 어떤 하늘이 있어서, 저렇게 착하고 예쁜 비둘기를 키울까. 그게 말이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는지도 모르지. 모자의 속은 깊고 넓다.

너무 쉬운 속임수가 되었는지, 이제는 그런 장면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어렵고 불가능해보이는 것만 보여주는 마술쇼를 이제는 더 이상 보지 않는다. 모자 속에서 새가 나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사람들은 떠올리지 못하는 것일까. 그 모자가 숨겨놓고 있는 그 막막하고 넓은 하늘 위로 떠가는 작은 구름의 조각이 신기하지 않단 말이야?

구름, 하니 모자. 모자, 하니 비둘기. 그리고
또 하나 떠오르는 한 사람. 모자가 참 잘 어울리는. 아니 어울릴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그는 조용하고 싶은 눈매를 가진 사람. 화가 날 땐 말을 하지 않고, 멀리 보듯 자신의 속을 한 번 더 들여다보는 사람. 머물르기 보단 멀리가지만 반드시 돌아오던 그런 사람. 나는 그런 그를 참 사랑했었다. 사랑했었다,고 말하는 것은 그가 어디 있는지 모르기 때문. 그는 참 아르마운 사람이지 모자가 잘 어울리는

나는 그가 모자를 쓴 것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가 밀짚모자를 쓴 것을 꼭 본 적이 있는 것만 같다. 그저 상상이라고 하기엔 너무 분명하게 밀짚모자를 쓴 그를 떠올릴 수 있다. 환한 낮의 일부를 가린 밀짚모자의 챙 그늘이 그의 얼굴 어느 부분을 가린다. 그가 부드럽게 웃는다. 그의 모자 뒤로 아주 작은 뭉개구름이 다른 구름을 찾아 흘러가고 있다. 햇빛이 가만가만 그 구름의 등을 비추고 있다. 아 좋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한다.

혹시 다시 그를 만날 수 있는 날이 있을까. 그를 다시 만나면 밀짚모자를 하나 선물해주고 싶다. 그가 머뜩지 않게 여기더라도 꼭 그에게 그 모자를 씌우고 싶다. 그런 그의 사진을 한 장 찍어 남기고 싶다. 그런 다음이라면, 다시 작별하여도 괜찮을 거야. 그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지 못하더라도. 그래도 괜찮아. 기쁜 마음으로 안녕, 안녕할 수 있을 것 같아. 그가 그 모자를 가지고 아주 멀리 떠나더라도. 그래서 다신 우리가 보지 못하더라도.

구름을 보면 나는 모자,를 떠올리고, 그 모자 속에선 비둘기도 나오고 당신도 있구나, 하고 막막해한다. 도무지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차곡차곡 나타나 내 앞에 펼쳐지는 것이니까.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알 수 없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어쨌든 나는 모자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모자가 잘 어울리는 내가 모자를 쓰고, 비둘기와 당신을 잊거나, 완전히 함께할 수 있다면, 그러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