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_post'에 해당되는 글 105건

  1. 만약, 나를 용서해줄 수 있다면, 2009.03.29
  2. 3. 16 캔커피 2009.03.25
  3. 내 방 풍경 1 2009.01.16
  4. 눈이 내린다. 2009.01.14
  5. 생각해보면, 꽃잎처럼 돋아나는 날들 2008.12.23

가장 두려운 것은 내가 혼자라는 사실. 공포가 나를 키운다
내가 버림받았다는 것 혹은, 그럴지도 모른다는 것
나는 거의 한 사람이다. 1인칭이 되지 못하는 괴로움
산수유 꽃이 피었다 나는 한 가지 생각만하고 있다 나는 말라간다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을까 처음 버려졌던 그 춥던 날
나는 눈물의 뿌리를 뽑았다 지금도 울고 싶지만 뿌리 없이 자라는 열매는 없지 않던가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나, 만약. 나를. 용서해줄 수 있다면.
나의 근처가 우리의 무엇이 될 수 있다면, 나는 웃을 수 있다
웃을 수 있는 것은 나의 근처가 우리의 무엇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가능성이 현실이 되는 것도 무섭다
잃는 것도, 아무것도 아닌 것도 무섭다
눈물이 나오지 않는 것도 무섭다
다시 나를 볼 수 있다면, 만약, 나를 용서해줄 수 있다면
나는 무슨 말을 처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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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6 캔커피

from Un_post/Post_post 2009. 3. 25. 01:02

3. 16 캔커피는 따뜻하다. 밖은 차갑고, 창문에는 하얀 서리가 낀다. 택시는 지나간다. 남은 사람은 새까맣다. 아니 새까만 밤이다. 새까만 밤에 캬라멜 향이 나는 캔커피를 마신다. 마시기 보다는 들고 있다. 속이 울렁이는 3. 16 캔커피.

3월 16일은 차갑고, 나는 종종 둘이 되었던 시간을 떠올린다. 그때도 이토록 어두웠다. 지구의 가장 어두운 방향으로 고개가 돌아간다. 가장 어두운 그런 밤도 있는 것이다. 나는 그림자의 가장 안쪽에 서 있고 싶었다. 캔커피 같은 풍경. 3. 16 캔커피 풍경.

바깥은 바람이 불었다. 나는 바람이 우리를, 이 땅 위에 모든 것들을, 바다를, 그리하여 지구를 조금씩 옆으로 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멜로디를 구상했다. 슬픈, 너무나 슬픈 멜로디, 3.16 캔커피 멜로디. 나는 사랑하지 말아야 할 너무 많은 것들을 사랑하고 있었다. 숙명이다. 지워지지 않는 자국이다. 니트에 묻어 아무래도 지워지지 않을 캔커피, 캔커피 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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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 풍경 1

from Un_post/Post_post 2009. 1. 16. 01:49


 

 

책상 위. 원하는 만큼 넓은, 내가 받은 가장 좋은 선물. 아주 무거운 무게도 버틸 수 있는 통 원목은 아닌, 적당히 밝은 내 손을 가장 많이 탄, 그 앞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묵직한 의무감과 슬픔이 찾아오는 그런 등, 조금 밝은 것이 불만인, 이미 죽어버린, 그 상태로 나와 더 오래 있을 그런 그런 사물.


두 손을 벌리고 무언가를 갈구하는 자세로 놓여진 장갑, 지난 크리스마스 선물, 내가 벗어놓은 손들, 그들의 혐의, 누군가의 가죽을 덮기위한 가죽의 손실된 원형,의 자세로 나의 손을 흉내내고 있는 아나 사실 퇴근길의 나의 손이었던, 허물이었던 따뜻함 그리고 또 무엇 하나.

또 우둘투둘한 내 피부를 위해 동생이 사준 비오템옴므 스킨로션 아쿠아틱 200ml, 바다의 한 색을 흉내낸 케이스 속에 들어 있는 따끔함, 그리고 부드러운 시원함, 조금씩 떨어져가는 비싼 화장품, 둘째의 인심 좋은 선물,

 

morteble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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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린다.

from Un_post/Post_post 2009. 1. 14. 00:54

 

 

  눈이 내린다. 퇴근할 때만해도 내리지 않던 눈이다. 시간이 '은빛 비늘을 털며' 구부러지고 있다. 지난 시간을 체험한다. 눈이 올 때마다 나는 친구들의 집 앞으로 걷던 나로 돌아간다. 슬픔이란 이런 것이다. 그러니 보라.

  믿음은 얼마나 서러운 것인가. 그때를 믿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사람이란 얼마나 갑작스런 잎사귀들인가. 눈이란 얼마나 소리없는 방문인가. 부스스 몸을 떨며 입김을 내뱉는다.

  눈이 올 것을 몰랐다는 것이 나를 혼자로 만든다. 눈이 내리는 밤은 눈이 내리지 않는 밤으로 천천히 이동하고 있다.

  아픈 시간은 아프지 않던 때를 그리워하여 아름답다. 내 모든 움직임은 뒤를 바라보고 뒤를 생각하고, 뒤를 위하여 움직이고 있다. 훈계나 충고는 어리석은 짓이다. 늙어버리는 것이 무서워 단숨에 끝까지 늙어버리는 속속들이를 생각한다. 그리고 서른. 나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싶다에서 싶었다로 뛰어넘는 나의 간절한 바람.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눈의 침묵을 물고 내가 잃어버린 것을 바라본다. 나는 어디쯤을 더듬고 싶었던 것일까.

 


morteble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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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조용히 우는 법만 배웠다. 사람은 그래야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한 사람은 낯선 사람이었다. 나는 모르는 사람에게 배우는 것을 좋아하므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매우 오래전 일이다. 

  내가 살던 동네에는 오래된 벚나무가 있었다. 할머니는 벚나무는 착한사람이 다시 태어난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할머니를 잘 몰랐으므로, 벚꽃 잎이 떨어질 때마다 우는 사람의 뒷모습을 떠올리곤 했다. 그 얇은 두께의 슬픔을 보다가 묽은 반점이 돋아나곤 했다. 잎 위로 겨울 벚나무의 모습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꽃잎에도 이야기는 있다. 그런 이야기를 꿈꿨다. 물속으로, 자맥질해 들어가는 물고기의 뒷모습, 을 닮은 쉼표, 같은 그런 이야기. 꿈을 꾸기 위해서 나는 깜깜해야 했으므로 나는 늘 더듬었다. 나의 바깥, 나의 근처들을 배웠다. 그리고 매년 벚꽃 잎은 떨어졌으므로 나는 그 시간만큼 자랐다.

  늘 담장 밖으로만 떨어지던 벚꽃은 그 동네의 역사가 되었다. 쌀집 큰 아들은 그 아래서 처음으로 연서(戀書)를 꿈꾸었고, 그 편지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문방구집 둘째 딸에게 전달되었다.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지금은 모른다. 그 촘촘한 시간 아래에, 나의 어머니들은 돗자리를 깔기도 하였다. 우리는 어머니가 화전 냄새 속으로 들락날락거렸다. 잠깐이라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그야말로 벚꽃 같았던 시절. 밤마다 개가 짖었던 것도, 동생의 팔이 부러진 것도, 아랫집 형이 가출을 했던 것도, 학교 사육장에 토끼들이 사라진 것도 모두 벚꽃 잎 때문이었다.

  첫사랑은 그렇게 분분(紛紛)하게 오는 것이다. 모조리 벚꽃이어서 밉기도 했던, 입에 넣어 잘근 씹으면, 쓰기만 했던 벚꽃 잎 같은 나이에 일이다. 사내아이들은 힘이 세졌고, 여자아이들은 새침해졌다. 그 아이는 보통 아이들보다 더 새침했으므로, 친구들은 그 애를 여우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런 별명이 더는 모욕이 아닌 나이였다. 모두 그 애를 좋아했고, 그 아이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먼 가지에서 자라난 벚꽃 잎처럼. 나는 더 이상 믿지 않게 된 할머니의 말을 생각했다: 차라리 벚나무에 묻힌 사내가 되었으면. 리시버를 귀에 꼽고 가수의 목소리가 늘어질 때까지 들었다. 보이는 것이 모두 음악이었으므로, 수치심마저도 슬펐다.

  이듬해 나는 그 벚나무가 좀더 잘 보이는 집으로 이사를 했으나, 창문을 여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꽃이 날리는 것은 바람의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므로. 그러나, 봄비가 내리던 날, 창문에 얼룩처럼 묻은 잎의 모양을 기억한다. 첫사랑 여자 아이의 이름처럼 그 분명했던 빛, 색. 잊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그것이 어른이다. 그렇게 말한 사람은 낯선 사람이었으므로, 나는 그 말을 노트에 적었다. 어서 노트의 색이 누렇게 바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벚꽃은 하염없이 떨어지고 떨어져 좀처럼 끝이 날 줄 몰랐다. 뒤로 돌아가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담임선생님은 나에게 일찍 죽은 시인의 시집을 선물했다. 좀처럼 바래지 않던 노트에 나는 이렇게 적었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왜 모두 일찍 죽거나, 죽으려 하는 것일까. 한 장 한 장 꽃비 속으로 나는 우산도 가만히 접은 채 들어 갔다. 시인을 꿈꿨다. 병이 났으나, 나는 그 병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 없었으므로. 그리고 오래된 벚나무가 있던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했다. 어른이 되었고,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잎을 떨어뜨린 지 일 년이 다 되어가는 겨울 벚나무를 본다. 어느 착한사람이었을 벚나무의 몸속으로 벚꽃이 기어오르고 있다. 조금 더 따뜻해지면 툭 튀어나올 꽃잎. 꽃잎에도 이야기는 있다. 나는 역사가 되어버린 그 벚나무의 사진을 가지고 있다. 오래되어 번진 그 사진 속으로 오래된 사람과 사랑과 옛 노트 그리고 나의 첫 시가 꽃이 만개한 벚나무를 흔들 고 있다. 흔들려 쏟아질 꽃잎을 생각한다. 더는 나의 어디에도 들러붙지 않을 작은 속들의 얇고, 흐릿한 꽃잎을 맞으며 나는 다시, 우산도 가만히 접은 채 들어가야 하는 것인데, 점점더 멀리 몇 번인가 이사한 내가 사는 집 근처에는 벚나무가 있었던가 생각한다. 그리고, 조용히 우는 것, 사람은 그래야한다고 배웠으므로 채 못자란 짐승처럼 작게 소리 내어 운다.

 


  morteble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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