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의 사진에서도 빛이 어둠에서 힘겹게 생겨나고 있다."_발터 벤야민, <사진의 작은 역사>
어두운 사진을 찍는 것, 빛이 어둘에서 드러나게 하는 방식. 연습을 해볼 필요가 있다. 밤보다는 빛이 강한 낮에, 감도를 최대한 낮추고, 조리개를 최소로 만들어놓은 상태에서, 셔터 속도로만 사진을 찍는 것. 핀홀의 그것처럼. 그렇게 해서, 빛의 흔적을 더듬어보는 것이다. 내일부터 해볼 것.
"힐의 사진에서도 빛이 어둠에서 힘겹게 생겨나고 있다."_발터 벤야민, <사진의 작은 역사>
어두운 사진을 찍는 것, 빛이 어둘에서 드러나게 하는 방식. 연습을 해볼 필요가 있다. 밤보다는 빛이 강한 낮에, 감도를 최대한 낮추고, 조리개를 최소로 만들어놓은 상태에서, 셔터 속도로만 사진을 찍는 것. 핀홀의 그것처럼. 그렇게 해서, 빛의 흔적을 더듬어보는 것이다. 내일부터 해볼 것.
"마주 잡은 손 끝의 힘이 점점 더 희미해지고 마주 향하던 그 눈빛은 점점 더 흐릿해지고"
-곰피디, <물고기자리>
스치다와 희미해지다 사이, 대상에 대한 분명한 인지는 감정에서 나온다. 이런 노래엔 그저 감탄어린 찬사만 나올 뿐인데, 이렇게 지난 시간에 남는 것은 사람이다. 그렇게 남는 사람을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확신하건대, 이 가사는 손이 적은 것이다. 사람이 적은 것이 아니다. 사람을 남기는 것은, 슬픔이거나, 눈이거나, 마음이거나, 결국 손이다. 그 손이 적은 것이다. 시도 그러하지만.
"잔학 행위 이후 우리는 비슷하고 뻔한 사과를 들을 수 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피해자가 거짓말을 한다. 피해자가 과장을 한다. 피해자가 초래한 일이다. 그리고 어떤 사건이든 이제 과거는 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가해자의 권력이 크면 클수록, 현실을 명명하고 정의하는 그의 특권은 더욱 커지고, 그의 논쟁은 더 완전해지고 강해진다."
-주디스 허먼, <<트라우마>>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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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미래는 권력의 것이다. 권력은 그 둘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란, 권력의 입장에선 힘의 이양, 즉 죽음을 의미한다. 가난하고 헐벗은 우리에게 현재가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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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집단에겐, 이번 대선의 패배는 괴멸, 정신적 사상적 심지어 육체적,을 의미한다. 궁지에 몰렸을 때,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하는 것. 정치,라는 게임의 패배이다.
오래된 친구와 오래도록 당신 이야기를 했습니다.
"신기하여라, 내 잠 속에 가득한 생명." -마종기
어떤 이야기는 스스로 울먹이기도 합니다. 아주 낡아버린 테이블에 몸을 기댄 채 서로를 향하여 귀를 기울이던 나와 내 친구는 그런 대화는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또 내내 다른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둥근 원 밖으론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지요. 나는 그를 알았고, 그는 나를 이해했던 까닭입니다. 그렇게 오늘 나와 내 친구는 하루 밤만큼 늙어갔습니다.
"노래를 부르다가 터져 나오는 내 울음,/ 입술을 깨물어도 도저히 그칠 수가 없네요." -마종기
친구와는 집 앞에서 헤어졌습니다. 문을 앞두고 나는 당신 근처에서 내내 망설였습니다. 여지껏 내가 살아온 방식이었지만, 도저히 나는 그리고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아마도, 평생을 그리하겠지요. 당신의 근처에서 내내, 망설이겠지요. 우연히 당신, 그런 나를 보게 되면 뭐라고 말할까요. 아무 말도 하지 않을까요. 그럴까요.
세상은 메말라가고. 사람은 죽기도 한다는 것을 배운 그때쯤 y는 유품을 찾으러 오라는 전화를 받고 아버지의 사무실로 갔다. 돌아가신 지 한 달이 좀 안 되는 어느 날이었고, 늦가을의 저녁이었고, 빈 자리는 서늘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남긴 것 없이 남은 것만 있는 사무실 책상을 짚고 한참을 서 있었다.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누가 물을 한 잔 두고 갔다. 고맙다는 인사도 못했는데, 벌써 문이 닫혔다. 왜 물일까. 내가 울기라도 해야 한단 말인가. 도대체, 한 컵만큼의 눈물을 쏟으려면 얼마나 울어야 할까. y는 조금 비뚤어져서, 그렇게 생각했다.
딱히 어느 방향도 아니게 엉거주춤하게 서서 바라본 창밖은 옆 건물의 벽만 보였다. 그리고 시내로 이어지는 길을 달리는 자동차와 오토바이의 소리들. 멍하게 그 소리를 듣던 y는 죽고 못살았던 것처럼 이럴 필요는 없는데. 생각했고, 웃음이 나왔고 그 웃음을 참지 않았다. y 스스로도 당황스러웠다. 문 너머로 소리가 들릴까 봐, 입을 막고 한참을 있었다. 점점 입안이 말라왔지만, 물을 마시기는 싫었다. 어서 나가고 싶을 뿐이었다. 서둘러, 가지고 온 박스에 몇 권 책과, 서류뭉치를 넣었다. 더는 넣을 것이 없었다. 생각보다 너무 가벼운 박스가 꼭 자신 같아서 y는 쓸쓸해졌다.
문득, 책상의 한 귀퉁이가 눈에 들어왔다. 아니 그 위에 적혀 있는 y의 이름이. y는 그것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아버지의 필적이었다. 힘주어 눌러 쓴, 아니 거의 새겨놓은 듯한 y의 이름이 거기 있었다. 아무리 자세히 보아도, 그 이름 말고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뭐였을까. 잠시 생각해보았지만, 알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y는, 어느 저녁 이 자리에 앉아 어둑어둑해지는 건너편 건물의 외벽을 바라보다가, 뭔가 떠오르기라도 한 듯 y의 이름을 적었을 아버지를 상상해보려 애썼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스르륵 아버지 모습이 뒤로 물러나는 것이었다. 바퀴 달린 의자를 뒤로 미는 사람의 모습처럼. 어떤 리듬으로. 천천히. 멀리.
계속, 계속, 창밖은 더 어두워질 수 없을 때까지 어두워졌고, 차들은 여전히 내달리는 중이었다. 옆방에서 누가, 짧게 헛기침을 했을 뿐, 건물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없었다. y는 오래 눈을 감고 있었다. 움직이면, 넘칠까봐 겁내는 한 컵의 물처럼. 가만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