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_post'에 해당되는 글 105건

  1. 의견 1 2010.11.14
  2. 내가 1 2010.11.12
  3. 긴 목을 가진 그림자 1 2010.11.04
  4. 폭풍이 1 2010.09.02
  5. 묘사 2010.08.26
  6. 상상력 1 2010.08.26
  7. 비 내리는 버스의 묘사 1 2010.08.24
  8. 1 2010.08.20
  9. 첫 노래 1 2010.08.17
  10. 바닷가 1 2010.08.17

의견

from Un_post/Post_post 2010. 11. 14. 19:09

나는 자꾸 어떤 목격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지나치게 자의적이고도 감동적인 것들이다. 그렇다고 하여 이 모든 것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데 대개의 것은 정확하게 표현할 자신이 없고 설령 겨우 적거나 말한다 해도 의미의 거의 모든 것이 사라진 채 문자나 소리만 남아 지극히 공허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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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from Un_post/Post_post 2010. 11. 12. 10:24
내가 시인일 때, 나는 불안하고 예민하다.
내가 시인이 아닐 때, 나는 내가 시인이기도 하여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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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목의 그림자가 내 창문으로 들어와 가만히 고개를 숙인다
숲에는 한 무리의 사내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그들의 등과 옆이 솔방울처럼 멀어 보였다
그림자의, 긴 목은 아마도 그들의 것
소나무가 거세게 달려온 것이다 여기까지
숲의 냄새가 난다 길고 긴 목을 가진
곧 밤이 될 것이다 저녁의 해는 사내들을 버릴 것이다
그들은 갈 곳을 잃은 채 창문에게 자신의 등을 내놓을 것이다
긴 목을 가지고 버려진 슬픈 개처럼, 슬퍼진 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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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이

from Un_post/Post_post 2010. 9. 2. 14:20

그 바다가 죽는다 이렇게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감아 담아온 명성이 쏟아진 다음,
 
투명한 손이 더듬어 고래古來가 젖어간다 그게 아니라면 고개를 숙인채 잠든 사람을 설명할 길이 없다

사진을 떨어뜨린 여자가 혼자 슬프다 바람이 앞을 쓰다듬는다 뒤가 서늘하다 달래기 힘든 아이가 울기 때문이다 여자가 눈빛을 아이의 볼에 붙인다

저기, 나눠가질 수 없도록 바다는 죽는다 죽어 찰랑이는 걸음을 남긴다 그런 건 가는 살을 가진 빗 같다 촘촘히 빗어 넘기는 검은 머리칼이거나 머리칼로 비유되는 것들

그것도 바다 창문 너머 생선의 고요가 파닥이고 있다 눈 먼 바다까지 가본 적이 없다


mortebleue, 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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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

from Un_post/Post_post 2010. 8. 26. 09:39
『낯선 시간 속으로』,  이인성

281쪽: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나는 바닷가로 나간다. 잿빛 하늘 가득히, 흰 점 점 점들이 부서져내려, 잿빛 바다 가득히, 주검의 넋처럼 홀연히 스며들고 있다. 여기서, 온 세상은 수도 없는 흰 점들이 희끗희끗 흩어진 점묘화인 양싶다. 다만 하늘과 바다만이 견고한 허무의 배경을 이룬다. 서로 조으아며 이미 경계선을 허물어버린 하늘과 바다는, 하나의 면으로, 아니, 작은 백지 속에서 내가 체험했던 자욱한 안개의 공간으로, 내 감각의 끝에서 몸을 치켜드는 복병같이, 희게 일어서는 파도가 내 발끝에서 부서진다. 희디흰 파열, 그것을 나는 하염없이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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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

from Un_post/Post_post 2010. 8. 26. 00:47

『불의 시학의 단편들』, 가스통 바슐라르, 안보옥 옮김


 48쪽: 시적 이미지란 진정 말parole의 한순간으로, 베르그송적 의식의 분리될 수 없는 연속성 상에서 위치를 설정하려 할 때는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순간이다. 시적 언어의 기습을 모두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자신을 만화경적인 의식에 내맡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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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둘 우산을 펴기 시작한다. 유독 도드라지는 빨간 우산. 나는 저 우산 색이 낯익다.
앞자리 여자는, 아까부터 울음을 마신다. 라디오 볼륨이 조금 높아진다.
누군가 담배를 피운다. 창밖이 부옇다. 콜록거리며 기침을 한다 누군가.
창문에 비친 사람의 모습을 더듬는디. 후득 손가락에 빗물이 묻고 마르지 않는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지금은 우산 없는 사람들을 위한 시간. 젖고 있다.
한 정거장 전에는 모두 발끝만 보고 있었다. 바닥이 젖어간다. 말이 잠을 잔다.
앞자리 여자는 속눈썹이 길지 않다. 날아서 오는 화장품 냄새. 괜찮다, 괜찮다 흔들리는 머리들. 젖어간다. 누구는 굳어가는 중이고.


morteble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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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Un_post/Post_post 2010. 8. 20. 01:36


 


그곳은 낡은 사람들의 통로다. 그들은 다 헤진 다리를 이끌고 계단을 오른다.

기차가 정시에 도착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시계는 열차 시간표만큼이나 쓸모없다.
아침에 출발한 이들은 늦은 저녁쯤에나 도착한다. 이따금 늦은 밤에 도착하는 이들은 더욱 너덜거리며 걷는다. 취한 그들에게 통로는 더욱 길고 넓다. 아침이 오면 그들은 다시 역으로 걸어 들어온다.

통로는, 한 사내의 죽음을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통로에서 죽은 그의 사인은 겨울이었다 그가 얼어붙은 땅에 묻혔을 때 그의 아내는 슬프게 울었다. 막 도착하려는 기차처럼.
기억은 기억에 불과하다. 무언가가 떠올랐을 때 쓰기를 망설이는 나처럼. 역은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역은 기차가 출발할 때마다 조금 흔들리고 천천히 다음, 점점 빠르게, 사라진다.

밤 11시 24분. 또 한 대의 기차가 도착하려고 한다. 내리려는 사람은 아직 보이지 않고, 타려는 사람은 천천히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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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노래

from Un_post/Post_post 2010. 8. 17. 22:22

나는 노래를 잘 못하지만, 내 첫 노래가 궁금하다. 그때에 나의 자세와 기분이 알고 싶다. 누굴 위해 노래했는지 궁금하다. 나였을지도. 나의 어머니였을지도. 이제는 없는 인형이었을지도. 알 수 없다. 창턱을 넘고도 남은 햇볕이 장판 위를 덮고, 나는 빛과 그늘의 경계를 더듬으며 놀고 있었을 것이다. 아주 작은 먼지들이 날리고 그보다 가볍게 떠올라 사라졌을 노래. 아주 고요했을. 누구도 틈입할 수 없는. 감정의 절정. 오직 마음 사랑했을. 모든 화살표가 마음을 향했던. 그립기만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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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from Un_post/Post_post 2010. 8. 17. 00:39

기다란 해초가 다리 한쪽을 휘감았다. 얕은 바다의 끝에는 불쑥 튀어나온 바위가 있었다. 바위 위로 기어 오른 아이들은 바다에 몸을 던졌다. 생겨난 포말이 해변까지 떠내려갔다. 아이들은 바람이 든 공을 던졌다. 서로 공을 안고 멀리까지 헤엄치려고 했다. 뭍으로 기어 나온 아이들은 숨을 헐떡였다. 여름날의 뜨거움이 아이들의 거센 숨을 만졌다. 껍질을 벗은 아이들이 점점 까매져갔다. 바다는 약속한 시간까지만 거기에 있었다. 젖은 발이 마르기 전에 아이들은 다시 바다로 뛰어들었다. 나는 아이들 중 하나였다. 말할 필요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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