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그리고 침착하게
            ―낯선 사람들

 

            날벌레처럼 흔들리는 얼굴들
            바깥에서 가끔 나는 ,로 저장된다 
            이름을 거두다, 엎지른다
            조용한 속도로 테이블이 젖는다 
            한 생이 뭉툭한 角으로 풀려나간다

            가만히 듣고 싶기만 한 소리를 
            자라나는 몇몇 죽은 사람들을
            낯설고 참 착하기만 한 남자와 여자들을
            기억하고 싶을 때는 입김을 불고
            동그랗게 원을 그리면 된다는 것을 
            남아 있는 사람들은 알고 있다

            끝내 동그랗지는 못한 깊은 밤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해서 
            모든 것들의 손을 적시고
            그러면, 어느새 그 끝이 단단해지고

            멀게, 멀게 멀고 가깝게
            어지럽게 흔들리는 眩氣를  
            만져보고 있는 것이다
            조용히
            그리고 침착하게

           

 

           morteble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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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from Un_post/Post_post 2009. 11. 30. 18:28

 

 

겨울이 되면,
추운 바람이 나의 직업이다.
그림자 코트를 입고
두손을 주머니에 가두고
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딱딱해진 놀이터에
죽어 사라진 얼굴들
그네를 탄다
(그넷줄 흔들리는 소리는 휘파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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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out you, with you

from Un_post/Post_post 2009. 11. 20. 01:40

  성당을 빙글빙글 돌다가 다리가 아파서 풀썩 성당으로 들어가 누군가의 결혼식을 구경하던 그날 나는 성지를 순례하는 사람의 마음이었다는 것을 아마도 모를 것이다. 애써 말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비밀이기 때문이 아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 믿기 때문이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겐 참 놀라운, 놀라운 날이었다.

  그날 찍은 사진이다. 멀리 따로 있지만 같이 있는 것 같은 여자들, 가까이 있지만 같이 있지 않은 두 사람. 진심은 진심을 만나봐야 알 수 있다는 것, 알겠다. mortebleue, 유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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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길

 
거적장사 하나 산 뒷녚 비탈을 오른다
아- 따르는 사람도 없이 쓸쓸한 쓸쓸한 길이다
산가마귀만 울며 날고
도적갠가 개 하나 어정어정 따러간다
이스라치전이 드나 머루전이 드나
수리취 땅버들이 하이얀 복이 서러웁다
뚜물같이 흐린 날 동풍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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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걷고, 시간이 불고,

백석의 시는 조용히 흔들린다. 흔든다.

“사람도 없이 쓸쓸한 쓸쓸한 길”에서 내가 당신께

morteble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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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별이 빛난다.
아니다.
오랜만에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차가운 대기가 부풀어 올라 투명해졌다.
입김이/을 날린다. 입가가 차가워졌다.
짧은 통화를 했다. 긴 침묵이 있었다.


언어에 대한 나와 당신의 깊은 회의(懷疑).
이 깊은 회의가 우리를 만들었다.


"우리, 잘 살고 있는 거겠지?"

그러나, 나는 여기에 있다.

아마도. 나는 '아마도'란 말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불쑥 나이가 들어차는 기분이다.
문이 열리고,     닫힌다.

적당히. 너무 진지할 필요 없다.

나는 '적당히'란 말은 꽤 좋아한다.

morteble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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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버라이어티 쇼에서 펼쳐지는
만자이 한 토막.

야스코(女子)라는 여자아이가 있다. 아비저는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고, 엄마와 단 둘이 산다.
여름방학, 모두들 어디론가 놀러가버린 도시.
야스코는 병실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 생의 뒤편을
자꾸만 쳐다보고 있는 엄마가 서운해 야스코는
발끝으로 침대 바퀴를 툭툭 건드린다. "엄마, 창밖만
쳐다보지 말고 나 좀 봐봐." 시선을
돌려 야스코를 바라보는 엄마.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
가다랭이 포처럼 딸아이가 흔들거린다. 누가 볼까
얼른 눈동자를 훔치며 엄마는 침대 및에서 튼튼하게
봉합된 편지 한 통을 꺼내어 든다. "우리 귀여운 딸. 내
목숨보다 소중한 야스코야, 살면서, 살아가면서, 온
힘으로 서 있어 보았지만 니 힘으로 도저히 어찌해볼
수가 없을 때, 그때 이 편지를 펴보렴."
엄마는 죽고, 여름방학은 끝난다. 너무 멀어
친척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아주머니 밑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야스코. 머리에서 냄새가 난다고,
옷이 더럽다고 아이들이 놀려대기 시작한다.
놀려대는 것으로 부족하자 한 명이 슬쩍 괴롭혀본다.
까르르르. 반응이 나쁘지 않자 서너 명이 달려든다.
그러던 어느 날, 파란 하늘 아래 야스코는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누군가 야스코의 책가방을 빼앗아
든다. "니가 머리핀을 훔치지 않았으면 가방에도
없을 거 아니야." 가방 안에서는 머리핀 대신 엄마의
편지가 나온다. "어머머, 연애편지인가봐. 꼴에
재주도 좋아." 필사적으로 엄마의 편지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저항하는 야스코. 치맛단이 뜯겨나가고,
실내화 주머니가 터져버린다. "제발 줘, 우리
엄마 꺼야." 울어도 본다. 야스코가 울면 울수록
편지는 아이들에게 돌려주지 못할 보물이 된다.
집에 두고 온 머리핀을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했던
여자아이가 마침내 편지봉투를 '부욱' 찢어낸다. 파란
하늘을 휘적휘적거리는 몇마리 잠자리들. 두 갈래로
머리를 솜씨 좋게 땋아올린 여자아이가 뜨악한
눈으로 편지를 바라본다. 궁금해 못 참겠다는 듯 다른
아이들이 편지를 건네받아 읽어보기 시작한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편지에는 뭐라고 적혀
있었던 거야?> 쯔코미를 담당하는
만담가가 묻는다. <응. 편지에는 말이지, 이렇게 적혀
있었어.> 보케가 의기양양 대답한다.


"야스코야·····, 죽어."


아이들이 구겨진 편지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사라진
자리.
땅바닥에 주저앉아 자신의 무릎에 고개를 파묻고
있는 야스코의 어깨에 잠자리 한 마리가 내려앉아
연신 고개를 갸웃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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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래서, 그런데, 그래도,······
많고많은 접속사 중에서 그렇지만,을 택해 살다
가신 내 아버지께 바친다.

2009. 11. 고재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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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람에게 늑대
는, 괴로운 연극이다. 

사람의 '속'이 환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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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from Un_post/Post_post 2009. 11. 17. 01:50


 

 

겨울, 하면 지나간 여름들이 생각난다.
이번 여름에는 무섭게 비가 내렸다.

니트를 한 장 선물 받았다.
겨울이 불었으나 춥지 않았다.

겨울이 찾아왔다고,
메일을 보냈다.
발끝이 시려웠고
거실 양탄자에 놓여진 센베이 봉투.

 

morteble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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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죄

from Un_post/Post_post 2009. 11. 14. 02:50


 

 

'아는 형'은 부끄러움이 많다. 그 형은 20대에 썼던 글을 찾아다니며 불사르고 있다.
언어는 죄를 낳는다고 했다.
내 언어의 목적은 멋진 죄의 집을 짓는 것이다.


morteble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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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Un_post/Post_post 2009. 11. 13. 01:41

 


집에 왔더니 부엌 앞에 귤이 한 박스 데굴데굴하다.
몇 개 쥐어본다. 그중 제일 말랑말랑한 것을 꺼낸다.
경험에 따르면, 그런 것이 달고 맛이 좋다.
나는 귤 껍질을 꼭지부터 벗긴다. 아래로 아래로.
귤이라니 그것 참 예쁜 명칭.

귤, 하면 공주 줄바위 근처 아버지 고향집이 생각난다.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폐허.
그때는 둘째 큰집 식구들이 살고 있었다.
명절 어느 때면 난 그집에 가서, 입김 하얀 잠을 잤다.
설이었는가 보다. 광에는 귤이 한 박스 있었다.
작고 예뻤던 우리들은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뛰어다니다가,
잊고 있었다는 듯 귤을 빼내 먹었다.

그렇게 맛있는 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없을 것이다. 그때가 돌아올 수 없는 것처럼.



morteble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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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능력시험

from Un_post/Post_post 2009. 11. 12. 15:26


 

 

아버지는 당신의 목도리를 풀어 내게 매어주셨다.

시험이 끝나고, 목도리를 풀며 담배를 피웠다.

그때 나는, 아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morteble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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