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버라이어티 쇼에서 펼쳐지는
만자이 한 토막.
야스코(女子)라는 여자아이가 있다. 아비저는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고, 엄마와 단 둘이 산다.
여름방학, 모두들 어디론가 놀러가버린 도시.
야스코는 병실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 생의 뒤편을
자꾸만 쳐다보고 있는 엄마가 서운해 야스코는
발끝으로 침대 바퀴를 툭툭 건드린다. "엄마, 창밖만
쳐다보지 말고 나 좀 봐봐." 시선을
돌려 야스코를 바라보는 엄마.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
가다랭이 포처럼 딸아이가 흔들거린다. 누가 볼까
얼른 눈동자를 훔치며 엄마는 침대 및에서 튼튼하게
봉합된 편지 한 통을 꺼내어 든다. "우리 귀여운 딸. 내
목숨보다 소중한 야스코야, 살면서, 살아가면서, 온
힘으로 서 있어 보았지만 니 힘으로 도저히 어찌해볼
수가 없을 때, 그때 이 편지를 펴보렴."
엄마는 죽고, 여름방학은 끝난다. 너무 멀어
친척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아주머니 밑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야스코. 머리에서 냄새가 난다고,
옷이 더럽다고 아이들이 놀려대기 시작한다.
놀려대는 것으로 부족하자 한 명이 슬쩍 괴롭혀본다.
까르르르. 반응이 나쁘지 않자 서너 명이 달려든다.
그러던 어느 날, 파란 하늘 아래 야스코는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누군가 야스코의 책가방을 빼앗아
든다. "니가 머리핀을 훔치지 않았으면 가방에도
없을 거 아니야." 가방 안에서는 머리핀 대신 엄마의
편지가 나온다. "어머머, 연애편지인가봐. 꼴에
재주도 좋아." 필사적으로 엄마의 편지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저항하는 야스코. 치맛단이 뜯겨나가고,
실내화 주머니가 터져버린다. "제발 줘, 우리
엄마 꺼야." 울어도 본다. 야스코가 울면 울수록
편지는 아이들에게 돌려주지 못할 보물이 된다.
집에 두고 온 머리핀을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했던
여자아이가 마침내 편지봉투를 '부욱' 찢어낸다. 파란
하늘을 휘적휘적거리는 몇마리 잠자리들. 두 갈래로
머리를 솜씨 좋게 땋아올린 여자아이가 뜨악한
눈으로 편지를 바라본다. 궁금해 못 참겠다는 듯 다른
아이들이 편지를 건네받아 읽어보기 시작한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편지에는 뭐라고 적혀
있었던 거야?> 쯔코미를 담당하는
만담가가 묻는다. <응. 편지에는 말이지, 이렇게 적혀
있었어.> 보케가 의기양양 대답한다.
"야스코야·····, 죽어."
아이들이 구겨진 편지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사라진
자리.
땅바닥에 주저앉아 자신의 무릎에 고개를 파묻고
있는 야스코의 어깨에 잠자리 한 마리가 내려앉아
연신 고개를 갸웃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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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래서, 그런데, 그래도,······
많고많은 접속사 중에서 그렇지만,을 택해 살다
가신 내 아버지께 바친다.
2009. 11. 고재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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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람에게 늑대
는, 괴로운 연극이다.
사람의 '속'이 환하게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