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삼, 「풍경」

from Un_post/Post_post 2009. 12. 30. 11:14

 




싱그러운 巨木들 언덕은 언제나 천천히 가고 있었다


나는 누구나 한 번 가는 길을
어슬렁어슬렁 가고 있었다

세상에 나오지 않은
樂器를 가진 아이와
손쥐고 가고 있었다

너무 조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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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조용하다. 나는 누구나 한 번 가는 길을 어슬렁어슬렁 가고 있다. 세상에 나오지 않은 악기를 가진 아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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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소리와 함께 불이 들어온다.
회사 앞 작은 정원에는 가스등 모양의 전등 두 개가 있다.
눈은 그쳤다. 하얀색 위로 전구 불빛이 어린다.
생각난다. 오래전, 나는 사람들에게 묻고 다녔다.


이불을 덮은 몸에는 까마득한 우주가 구겨져 있다. 
이번 겨울은 알 수 없게 따뜻했다.
아득하다. 벌써.

 


morteble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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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때문에 죽고 살 일은 없었으면 하는데
자꾸 엄마는 시를 놓으라고 울고 나는 고양이를 울린다
자꾸 시 가지고 생활을 반성하는 놈 좀 없었으면 하는데
시 때문에 30분을 책상에 앉아 있다가도 참혹해지고
시 한 편 발표하고 나면
몰래 거리에 쓰레기 봉지를 두고 온 기분이 든다

시 때문에 살 일 좀 생겼으면 하는데
사형수가 교수대를 향해 걸어가면서
뒤따라오는 간수들에게 갑자기
자꾸 밀지 말라고 울먹이는 광경처럼

밀지도 않는데 떠밀리고 있다는 느낌으로부터

시만 짜서 이대로 생활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

시 때문에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
오래 시 안 쓰다가 다시 쓴다는 놈 생각
좀 하고
다시 쓴다는 놈치고
세상의 속물 다 겪은 후 오만하게 돌아온 것 못 봤다
그게 시의 구원이라면
시 때문에 형편없는 연애라도 그만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도 해 보지만
시 때문에 죽어서도 까불지 못하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따지고 볼 것도 없이 신파란
내 쪽에서 먼저 부러우면 지는 법이다
이기고 지고 살 일도 아닌데 시 때문에
이름 없는 무덤 옆에 가서도 잠도 자 보았다

시 때문에 울먹이는 일 좀 없었으면 하는데
하루도 새가 떨어지지 않는 하늘이 없다

김경주, 『시차의 눈을 달랜다』(민음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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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려고 침대에 누워 경주 형의 시집을 얼핏, 펼치다가 보고 적는다.

따뜻했던 저녁이 추운 밤이 되고 아까는 문득, 그런데 춥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morteble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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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잇값만큼 깊어지는 여자의 우울과
우울을 모독하고 싶은 악의 때문에

창문 꼭꼭 닫아둔 여자의 베란다에선
여린 식물들부터 차례대로 말라 죽기 시작했다
볕이 너무 좋았으므로 식물들은
과식을 하고 배가 터져 죽게 된 것이다

악의를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여자의 노련함 때문에
한 개의 꼬리가 아홉 개의 꼬리로 둔갑한다
꼬리를 감추기 위해 여자는
그림자의 머리끄덩이를 잡아챈다
아스팔트에 내동댕이를 친다

자기 기억을 비워내기 위해
심장을 꺼내어 말리는 오후
자기 슬픔을 비워내기 위해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 헹구는 오후

여자는 혼잣말을 한다
왜 나는 기억이나 슬픔 같은 것으로도 살이 찌나
왜 나의 방은 추억에 불만 켜도 홍등가가 되나

늙어가는 몸 때문이 아니라
나이만큼 무한 증식하는 추억 때문에
여자의 심장이 비만증에 걸린 오후
드디어 여자는 코끼리로 진화했음을 안다

진화에 대해서라면 여자도 할 말이 있었다
한때 여자도 텅 빈 육체로 가볍게 나는
작고 작은 새 한 마리였으므로

이제 여자는 과거에 대해서만
겨우 할 말이 있을 뿐이다
공복의 시간은 여자에게 그때뿐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없고 시시각각만이 존재하는
여자 앞에서
아무도 세월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축대 난간에 기댄 모르는 노인네의 울음까지도
귀 기울여 참고해왔으므로 여자는 안다

사람의 울음을 위로한 자는 그 울음에 접착된다
사람의 울음을 이해한 자는 그 울음에 순교한다
그러나 울음은
유목의 속성이 있어 들어줄 사람을 옮긴다
더 큰 울음보를 장전하기 위해
더 큰 고통을 발명한다

여자의 손안에는 꼭 쥐어 짓물러진
과일이 들어 있다
그 즙이 소맷자락을 타고 올라가
끈끈한 악취를 풍긴다
그럴 때면 여자는 안달이 난다

악취를 우울로 포장해줘
시퍼런 나뭇잎들은 나의 우울을 모독해줘
후회 없이 하루를 살다 누렇게 시들게 해줘

여자는 언제나 얌전하게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는 순교자를 강간하고 퍼질러 앉았던
꽃방석이 있다
비로소 여자는 기형아를 낳는다

기형아를 꺼내고 홀쭉해진 배를 여자는
시뻘건 육식으로 가득 채운다 마치 아귀처럼
마치 악다구니처럼 그렇지만 아름다웁게

(김소연, 『눈물이라는 뼈』, 문학과지성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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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여자는 과거에 대해서만
겨우 할 말이 있을 뿐이다"

"사람의 울음을 이해한 자는 그 울음에 순교한다
그러나 울음은
유목의 속성이 있어 들어줄 사람을 옮긴다
더 큰 울음보를 장전하기 위해
더 큰 고통을 발명한다"

"시퍼런 나뭇잎들은 나의 우울을 모독해줘
후회 없이 하루를 살다 누렇게 시들게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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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차

from Un_post/Post_post 2009. 12. 15. 17:37

 

 

'유자차를 끓이고 싶다'라는 글을 보자니,
유자차 향이 그립구나. 따뜻한 컵에 손을 대고
가능한 모든 숨을 끌어모아서
향을 맡고 싶다. 벌써, 코끝이 차다.

겨울이다. 숨겨두었던 것들이 생각난다.



morteble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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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히 그리고 침착하게
            ―낯선 사람들

 

            날벌레처럼 흔들리는 얼굴들
            바깥에서 가끔 나는 ,로 저장된다 
            이름을 거두다, 엎지른다
            조용한 속도로 테이블이 젖는다 
            한 생이 뭉툭한 角으로 풀려나간다

            가만히 듣고 싶기만 한 소리를 
            자라나는 몇몇 죽은 사람들을
            낯설고 참 착하기만 한 남자와 여자들을
            기억하고 싶을 때는 입김을 불고
            동그랗게 원을 그리면 된다는 것을 
            남아 있는 사람들은 알고 있다

            끝내 동그랗지는 못한 깊은 밤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해서 
            모든 것들의 손을 적시고
            그러면, 어느새 그 끝이 단단해지고

            멀게, 멀게 멀고 가깝게
            어지럽게 흔들리는 眩氣를  
            만져보고 있는 것이다
            조용히
            그리고 침착하게

           

 

           morteble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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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from Un_post/Post_post 2009. 11. 30. 18:28

 

 

겨울이 되면,
추운 바람이 나의 직업이다.
그림자 코트를 입고
두손을 주머니에 가두고
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딱딱해진 놀이터에
죽어 사라진 얼굴들
그네를 탄다
(그넷줄 흔들리는 소리는 휘파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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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out you, with you

from Un_post/Post_post 2009. 11. 20. 01:40

  성당을 빙글빙글 돌다가 다리가 아파서 풀썩 성당으로 들어가 누군가의 결혼식을 구경하던 그날 나는 성지를 순례하는 사람의 마음이었다는 것을 아마도 모를 것이다. 애써 말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비밀이기 때문이 아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 믿기 때문이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겐 참 놀라운, 놀라운 날이었다.

  그날 찍은 사진이다. 멀리 따로 있지만 같이 있는 것 같은 여자들, 가까이 있지만 같이 있지 않은 두 사람. 진심은 진심을 만나봐야 알 수 있다는 것, 알겠다. mortebleue, 유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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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길

 
거적장사 하나 산 뒷녚 비탈을 오른다
아- 따르는 사람도 없이 쓸쓸한 쓸쓸한 길이다
산가마귀만 울며 날고
도적갠가 개 하나 어정어정 따러간다
이스라치전이 드나 머루전이 드나
수리취 땅버들이 하이얀 복이 서러웁다
뚜물같이 흐린 날 동풍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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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걷고, 시간이 불고,

백석의 시는 조용히 흔들린다. 흔든다.

“사람도 없이 쓸쓸한 쓸쓸한 길”에서 내가 당신께

morteble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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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별이 빛난다.
아니다.
오랜만에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차가운 대기가 부풀어 올라 투명해졌다.
입김이/을 날린다. 입가가 차가워졌다.
짧은 통화를 했다. 긴 침묵이 있었다.


언어에 대한 나와 당신의 깊은 회의(懷疑).
이 깊은 회의가 우리를 만들었다.


"우리, 잘 살고 있는 거겠지?"

그러나, 나는 여기에 있다.

아마도. 나는 '아마도'란 말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불쑥 나이가 들어차는 기분이다.
문이 열리고,     닫힌다.

적당히. 너무 진지할 필요 없다.

나는 '적당히'란 말은 꽤 좋아한다.

morteble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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