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_post/Post_post'에 해당되는 글 90건

  1. 상상력 1 2010.08.26
  2. 비 내리는 버스의 묘사 1 2010.08.24
  3. 1 2010.08.20
  4. 첫 노래 1 2010.08.17
  5. 바닷가 1 2010.08.17
  6. 삼각 김밥 4 2010.08.09
  7. 내 방 1 2010.08.08
  8. 오, 하늘 1 2010.07.27
  9. 꿈과 같은 1 2010.07.25
  10. 무거운 이야기들 2 2010.07.24

상상력

from Un_post/Post_post 2010. 8. 26. 00:47

『불의 시학의 단편들』, 가스통 바슐라르, 안보옥 옮김


 48쪽: 시적 이미지란 진정 말parole의 한순간으로, 베르그송적 의식의 분리될 수 없는 연속성 상에서 위치를 설정하려 할 때는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순간이다. 시적 언어의 기습을 모두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자신을 만화경적인 의식에 내맡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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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둘 우산을 펴기 시작한다. 유독 도드라지는 빨간 우산. 나는 저 우산 색이 낯익다.
앞자리 여자는, 아까부터 울음을 마신다. 라디오 볼륨이 조금 높아진다.
누군가 담배를 피운다. 창밖이 부옇다. 콜록거리며 기침을 한다 누군가.
창문에 비친 사람의 모습을 더듬는디. 후득 손가락에 빗물이 묻고 마르지 않는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지금은 우산 없는 사람들을 위한 시간. 젖고 있다.
한 정거장 전에는 모두 발끝만 보고 있었다. 바닥이 젖어간다. 말이 잠을 잔다.
앞자리 여자는 속눈썹이 길지 않다. 날아서 오는 화장품 냄새. 괜찮다, 괜찮다 흔들리는 머리들. 젖어간다. 누구는 굳어가는 중이고.


morteble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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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Un_post/Post_post 2010. 8. 20. 01:36


 


그곳은 낡은 사람들의 통로다. 그들은 다 헤진 다리를 이끌고 계단을 오른다.

기차가 정시에 도착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시계는 열차 시간표만큼이나 쓸모없다.
아침에 출발한 이들은 늦은 저녁쯤에나 도착한다. 이따금 늦은 밤에 도착하는 이들은 더욱 너덜거리며 걷는다. 취한 그들에게 통로는 더욱 길고 넓다. 아침이 오면 그들은 다시 역으로 걸어 들어온다.

통로는, 한 사내의 죽음을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통로에서 죽은 그의 사인은 겨울이었다 그가 얼어붙은 땅에 묻혔을 때 그의 아내는 슬프게 울었다. 막 도착하려는 기차처럼.
기억은 기억에 불과하다. 무언가가 떠올랐을 때 쓰기를 망설이는 나처럼. 역은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역은 기차가 출발할 때마다 조금 흔들리고 천천히 다음, 점점 빠르게, 사라진다.

밤 11시 24분. 또 한 대의 기차가 도착하려고 한다. 내리려는 사람은 아직 보이지 않고, 타려는 사람은 천천히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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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노래

from Un_post/Post_post 2010. 8. 17. 22:22

나는 노래를 잘 못하지만, 내 첫 노래가 궁금하다. 그때에 나의 자세와 기분이 알고 싶다. 누굴 위해 노래했는지 궁금하다. 나였을지도. 나의 어머니였을지도. 이제는 없는 인형이었을지도. 알 수 없다. 창턱을 넘고도 남은 햇볕이 장판 위를 덮고, 나는 빛과 그늘의 경계를 더듬으며 놀고 있었을 것이다. 아주 작은 먼지들이 날리고 그보다 가볍게 떠올라 사라졌을 노래. 아주 고요했을. 누구도 틈입할 수 없는. 감정의 절정. 오직 마음 사랑했을. 모든 화살표가 마음을 향했던. 그립기만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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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from Un_post/Post_post 2010. 8. 17. 00:39

기다란 해초가 다리 한쪽을 휘감았다. 얕은 바다의 끝에는 불쑥 튀어나온 바위가 있었다. 바위 위로 기어 오른 아이들은 바다에 몸을 던졌다. 생겨난 포말이 해변까지 떠내려갔다. 아이들은 바람이 든 공을 던졌다. 서로 공을 안고 멀리까지 헤엄치려고 했다. 뭍으로 기어 나온 아이들은 숨을 헐떡였다. 여름날의 뜨거움이 아이들의 거센 숨을 만졌다. 껍질을 벗은 아이들이 점점 까매져갔다. 바다는 약속한 시간까지만 거기에 있었다. 젖은 발이 마르기 전에 아이들은 다시 바다로 뛰어들었다. 나는 아이들 중 하나였다. 말할 필요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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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 김밥

from Un_post/Post_post 2010. 8. 9. 02:44

은이가 준 삼각 김밥을 들고, 이곳은 그늘 속 같다.
삼각 김밥의 반을 씹는다. 아직 차가운 밥알들. 
비닐 포장을 잘 못 뜯는다고 구박하던 이가 있었다.
나는 아직도 삼각 김밥을 잘 뜯지 못한다.
고추장 불고기 양념이 오른 엄지에 슬쩍 묻었다.
 
나머지 반을 가지고 고민을 한다. 한입에 넣기에는 조금 많은 양.
고민하다가 깊이 잠들었을 이를 생각한다. 곧 가을이 될 것이다.
내년쯤엔 시집을 낼 수 있으면 좋겠다. 욕심이지만, 그랬으면 좋겠다.
결국 한입에 다 넣고는 입을 가리며 씹는다.
입의 한쪽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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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

from Un_post/Post_post 2010. 8. 8. 02:23

밤이 더 깊어져 아침이 다가오면 내 방의 이곳저곳에선 트럭의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들린다 시동을 거는 자들의 얼굴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상상 속의 그들은 모두 검은색에 가깝다 아직 어둔 밤이기 때문이다 엔진의 예열이 끝나고 그들이 출발하면 그때부터 아침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시간 나는 그들 한 명 한 명 찾아가 그들의 손에 묻은 냄새를 맡는다 정신의 깊숙한 곳을 찌르는 그 냄새들이 나를 잠들지 못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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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하늘

from Un_post/Post_post 2010. 7. 27. 01:24
나와 다른 한 명이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거대한 구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조금도 꾸미지 않고 천천히 분리되며. 그래 구름이. 멀리에도 구름이 있었고 두 명은
나무 의자에 앉아서 구름을 보고 있었다. 구름들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다. 저쪽으로. 그냥 저쪽으로 미끄러졌다.
두 명은 각각 무슨 말을 했는데 중요하진 않았다. 그저 나는 풀썩, 구름 위에 앉고 싶어 하는 어떤 한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자꾸 풀썩, 풀썩,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밤이 왔다. 나와 다른 한 명은 더 이상 나무 의자에 앉아 있지 않았다.
구름은 조금만 보였다. 나는 그것도 좋았다. 다른 한 사람은 어땠는지, 지금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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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같은

from Un_post/Post_post 2010. 7. 25. 22:23

구름이 조각조각 흩어지고 있었다. 같이 걷던 이는
살짝 손을 잡았다가 팔짱을 꼈다가 이내 걸음을 흐트러뜨리고는 멀어졌다.
희안하게도, 잠이 쏟아졌다.입술에 묻는 가루들이 날아다녔다. 언어였다.
멀리 이 층만 한 소나무 두 그루가 보였다. 아쉬운 것들, 소리 없는 것들이 모두 내 것이었다
나는 걷고 있었다. 내가 아닌 것들이 보였다가 보이지 않게, 뒤로 물러났다
함께 걷던 이는 후후 웃었다가 금방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멀리까지 걸었다. 아주 멀리까지 걸어 간 기분이었다.

morteble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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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이야기들

from Un_post/Post_post 2010. 7. 24. 01:50

어릴 적 생각이 났다. 커다란 이불을 둘러 덮고 올망졸망하게 누운 또래 친척들.
지금처럼 그때도 나는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했다. 형들은 많은 이야기들을 알고 있었다.
이불로 입을 틀어막으며 키득거리게 만든 그 이야기들.
이불의 두께와 감촉만 남아 있어서 다행이야. 지금은 그렇게 웃지 않을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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