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_post/Post_post'에 해당되는 글 90건

  1. 연극 2009년 11월 사람은 사람에게 늑대_고재귀 작가의 '작가의 말' 2009.11.17
  2. 겨울 1 2009.11.17
  3. 언어-죄 2009.11.14
  4. 2009.11.13
  5. 수학능력시험 2009.11.12
  6. 춥구나. 2009.11.12
  7. 휴가다 어쩌면 2009.09.04
  8. 파란 입들 돋아나네 2009.09.04
  9. 그런 저녁_200?.?.? 2009.06.11
  10. 20090605 2009.06.05


일본 버라이어티 쇼에서 펼쳐지는
만자이 한 토막.

야스코(女子)라는 여자아이가 있다. 아비저는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고, 엄마와 단 둘이 산다.
여름방학, 모두들 어디론가 놀러가버린 도시.
야스코는 병실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 생의 뒤편을
자꾸만 쳐다보고 있는 엄마가 서운해 야스코는
발끝으로 침대 바퀴를 툭툭 건드린다. "엄마, 창밖만
쳐다보지 말고 나 좀 봐봐." 시선을
돌려 야스코를 바라보는 엄마.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
가다랭이 포처럼 딸아이가 흔들거린다. 누가 볼까
얼른 눈동자를 훔치며 엄마는 침대 및에서 튼튼하게
봉합된 편지 한 통을 꺼내어 든다. "우리 귀여운 딸. 내
목숨보다 소중한 야스코야, 살면서, 살아가면서, 온
힘으로 서 있어 보았지만 니 힘으로 도저히 어찌해볼
수가 없을 때, 그때 이 편지를 펴보렴."
엄마는 죽고, 여름방학은 끝난다. 너무 멀어
친척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아주머니 밑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야스코. 머리에서 냄새가 난다고,
옷이 더럽다고 아이들이 놀려대기 시작한다.
놀려대는 것으로 부족하자 한 명이 슬쩍 괴롭혀본다.
까르르르. 반응이 나쁘지 않자 서너 명이 달려든다.
그러던 어느 날, 파란 하늘 아래 야스코는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누군가 야스코의 책가방을 빼앗아
든다. "니가 머리핀을 훔치지 않았으면 가방에도
없을 거 아니야." 가방 안에서는 머리핀 대신 엄마의
편지가 나온다. "어머머, 연애편지인가봐. 꼴에
재주도 좋아." 필사적으로 엄마의 편지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저항하는 야스코. 치맛단이 뜯겨나가고,
실내화 주머니가 터져버린다. "제발 줘, 우리
엄마 꺼야." 울어도 본다. 야스코가 울면 울수록
편지는 아이들에게 돌려주지 못할 보물이 된다.
집에 두고 온 머리핀을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했던
여자아이가 마침내 편지봉투를 '부욱' 찢어낸다. 파란
하늘을 휘적휘적거리는 몇마리 잠자리들. 두 갈래로
머리를 솜씨 좋게 땋아올린 여자아이가 뜨악한
눈으로 편지를 바라본다. 궁금해 못 참겠다는 듯 다른
아이들이 편지를 건네받아 읽어보기 시작한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편지에는 뭐라고 적혀
있었던 거야?> 쯔코미를 담당하는
만담가가 묻는다. <응. 편지에는 말이지, 이렇게 적혀
있었어.> 보케가 의기양양 대답한다.


"야스코야·····, 죽어."


아이들이 구겨진 편지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사라진
자리.
땅바닥에 주저앉아 자신의 무릎에 고개를 파묻고
있는 야스코의 어깨에 잠자리 한 마리가 내려앉아
연신 고개를 갸웃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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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래서, 그런데, 그래도,······
많고많은 접속사 중에서 그렇지만,을 택해 살다
가신 내 아버지께 바친다.

2009. 11. 고재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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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람에게 늑대
는, 괴로운 연극이다. 

사람의 '속'이 환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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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from Un_post/Post_post 2009. 11. 17. 01:50


 

 

겨울, 하면 지나간 여름들이 생각난다.
이번 여름에는 무섭게 비가 내렸다.

니트를 한 장 선물 받았다.
겨울이 불었으나 춥지 않았다.

겨울이 찾아왔다고,
메일을 보냈다.
발끝이 시려웠고
거실 양탄자에 놓여진 센베이 봉투.

 

morteble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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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죄

from Un_post/Post_post 2009. 11. 14. 02:50


 

 

'아는 형'은 부끄러움이 많다. 그 형은 20대에 썼던 글을 찾아다니며 불사르고 있다.
언어는 죄를 낳는다고 했다.
내 언어의 목적은 멋진 죄의 집을 짓는 것이다.


morteble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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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Un_post/Post_post 2009. 11. 13. 01:41

 


집에 왔더니 부엌 앞에 귤이 한 박스 데굴데굴하다.
몇 개 쥐어본다. 그중 제일 말랑말랑한 것을 꺼낸다.
경험에 따르면, 그런 것이 달고 맛이 좋다.
나는 귤 껍질을 꼭지부터 벗긴다. 아래로 아래로.
귤이라니 그것 참 예쁜 명칭.

귤, 하면 공주 줄바위 근처 아버지 고향집이 생각난다.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폐허.
그때는 둘째 큰집 식구들이 살고 있었다.
명절 어느 때면 난 그집에 가서, 입김 하얀 잠을 잤다.
설이었는가 보다. 광에는 귤이 한 박스 있었다.
작고 예뻤던 우리들은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뛰어다니다가,
잊고 있었다는 듯 귤을 빼내 먹었다.

그렇게 맛있는 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없을 것이다. 그때가 돌아올 수 없는 것처럼.



morteble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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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능력시험

from Un_post/Post_post 2009. 11. 12. 15:26


 

 

아버지는 당신의 목도리를 풀어 내게 매어주셨다.

시험이 끝나고, 목도리를 풀며 담배를 피웠다.

그때 나는, 아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morteble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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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구나.

from Un_post/Post_post 2009. 11. 12. 01:09

 

 


춥다. 바람이 세다. 차다.

피곤하다. 몸도 아프다

아픈 데만 느껴진다.

구석구석 내 몸이 느껴진다. 살아 있구나. 살아 있는 게 병이다.

 

카테고리를 다 없애버렸다. 홀가분하다.

밀린 책이 꽤 많다.


morteble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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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다 어쩌면

from Un_post/Post_post 2009. 9. 4. 17:28



                           휴가다. 어쩌면
                           유예다. 나는 구석 자리에 만족한다.
                           오늘은 얇은 니트를 입었다.

                          실험이라도 하듯. 덥지 않다. 가을이 찾아 왔다.
                          가을을 증명했다. 반쪽짜리 휴가를 찾아 먹은 날에.

 

                     morteble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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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 잎들 돋아나네
                 우리는 입을 내밀어 잎을 물고 구름 위를 통과하는 숨을 쉬고 있네
                 이런 날엔 하늘이 폐 속에 가득 차는 것 같아서 어쩐지
                 마음이 아프고 돌아오지 않을 날들을 생각하네.

                 그건 내게 현기증 나는 일.

                 파란 잎들 돋아나네

                 파랗지 않은, 푸른 입들이 태어나고 있네.

 

                 morteble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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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저녁_200?.?.?

from Un_post/Post_post 2009. 6. 11. 20:13

그런 저녁에. Leica M6+50mm summicr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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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5

from Un_post/Post_post 2009. 6. 5. 13:16

 

 

 

  달력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새 날들과 헌 날들을 오래 들여다보려 노력한다. 창밖은 밝고 뜨겁다. 점심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하나둘 무리를 지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지금. 누군가 죽었을 것이다. 단 한 명도 태어나지 않고 단 한 명도 죽지 않는 시간이 있었을까. 그 시간을 고요라고 부른다. 마음은 울먹인 지 오래. 눈물은 나지 않는다. 햇빛 아래 오래 놓인 색처럼 바래져 버렸나 봐. 그래서 울고 싶다는 소리는 아니다. 이렇게 눈이 부신 오훈데.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목을 꽉 메운 소리들이 머릿속을 떠도네. 떠돌면서 귀를 매만지네. 작게 말을 거네. 이 눈부시고 뜨거운 오후에.

  둥글고 하얀 컵의 주둥이. 조금만 조금만 더 미친다면, 자유로울텐데. 나는 미치지 않아서 평범하다. 평범하다는 이 감옥. 나의 미침을 궁리한다. 세계는 보다 더 직관적이다. 직관의 논리는 논리적으로 형상화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증명하려는 모든 자들아. 그대들은 미쳤거나 바보.  이 순간에도 세계는 좀더 직관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그다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눈부시고 뜨거운 오후에 나는 손을 세워 그늘을 만든다. 누군가는 나로 인해 죽을 것이고, 누군가는 태어나겠지. 그런 거,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야.

 

 


morteble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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